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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음모론자'가 미국 보건 수장 되다…"인신공격은 답 아냐"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11.19 09:01|수정 : 2024.11.19 09:01

[뉴스페퍼민트] 표현의 자유와 과학, 대중의 신뢰와 공중보건 정책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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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케네디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2기 행정부 인사를 속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보좌할 참모들은 대부분 상원의 인준 없이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부 부처 장관과 연방기관장 등 독립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보직을 맡게 될 이들은 대통령이 지명하더라도 인사청문회를 포함한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각 부처 장관과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이사, 증권거래위원장, 연방거래위원장 등 독립 기관, 중앙정보국(CIA)장과 연방수사국(FBI)장 등 정보기관, 국세청(IRS)장, 식품의약국(FDA)장 등이 여기 포함됩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파격 인사’라 부를 만한 인사가 많습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 전통적인 정치인들과도 인재 풀이 완전히 다른 트럼프인 만큼 모두를 놀라게 하는 지명이 이어졌죠. 자연히 이를 둘러싼 논란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는데, 모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정부를 꾸리는 데 필요한 고유의 권한인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고, 의회도 공화당이 모두 다수당을 차지한 만큼 논란은 논란일 뿐 인사를 철회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대통령의 인사를 검증하고 필요할 경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상원이 주어진 역할을 어디까지, 얼마나 행사할지 정도에 관심이 쏠릴 뿐입니다.

오늘 글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사 전반을 짚어보는 글은 아닙니다.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은 선거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다수당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선거 중에 약속한 것들을 정책으로 만들어 펴기 위해 알맞은 인물을 적재적소에 앉히는 건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논란이 있더라도 옳고 그름을 논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논란’에 그칠 겁니다.

그런데 많은 보직 가운데 정치적인 논란뿐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에 속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보직도 있습니다. 특히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 그 피해가 사람의 목숨과 직결될 가능성이 큰 분야이기도 하죠. 바로 보건복지부(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HHS) 장관 자리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제3 후보로 대선에 뛰어들었다가 중도에 후보를 사퇴하고 자신을 지지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했습니다.

케네디 주니어 장관 후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아들입니다. 뉴욕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전에는 형인 존 F. 케네디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케네디 의원은 196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다가 중간에 암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케네디 주니어 장관 후보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죠.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 가문인 케네디 집안에서 트럼프 지지자가 나온 것도 특이하지만, 케네디 주니어 장관 후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주당과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환경 운동에 매진할 때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백신의 안전성을 문제 삼은 각종 회의론과 음모론을 신봉하고 퍼뜨리는 데 앞장서면서 일부 대중에겐 지지를 받았지만, 민주당 사람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큰 비판을 받았죠. 그런 케네디 주니어에게 트럼프 당선인은 통 큰 논공행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를 맡겼습니다. 상원 인준 절차가 남았지만,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구호까지 마가와 운율을 맞춘 마하(MAHA, Make America Healthy Again)로 바꿨던 케네디 주니어에게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들을 정책으로 옮길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 행정부의 공중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입니다.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장관이 되면 당장 백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접종률이 낮아지고, 이 때문에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집단 면역이 형성되지 않을 경우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인사인 만큼 보건복지 관련 부처, 기관의 예산도 대대적으로 삭감할 텐데 그 결과 미국인의 공중 보건이 악화할 수 있을 거란 우려도 제기됩니다. 그 밖에도 임신중절 약이나 시술의 접근성을 제약하거나 보건복지 정책을 집행한 경험이 부족한 점, 부처의 정치화도 우려됩니다.

보건복지부가 하는 일과 기능 중에는 정치적인 논란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과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보건 정책을 수립하고 대책을 내야 할 때 데이터를 잘못 읽거나 근거 없는 낭설을 토대로 한다면 피해가 막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케네디 주니어 장관 후보의 이력이 특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으로부터 과학의 영역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보건 당국이 당면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경제학자 에밀리 오스터 교수가 케네디 주니어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지명에 맞춰 쓴 칼럼에서 그 문제를 짚었습니다.
 
오스터 교수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한 통념들 가운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내용들을 날카롭게 짚어낸 책 “Expecting Better”로 많은 주목을 받은 경제학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습니다.) 건강, 공중보건 분야에서 흔히 알고 있는 통념이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경우, 심지어 가짜뉴스나 음모론의 영향을 받아 걸러내야 할 정보인 경우를 찾아내 설명해 온 오스터 교수에게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장관 후보는 ‘할 말이 많은’ 분석 대상일 겁니다.

오스터 교수는 홍역 백신에 대한 우려와 수돗물에서 불소 성분을 빼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살균을 거치지 않은 생우유가 몸에 좋다는 케네디 주니어 후보의 평소 주장을 예로 듭니다. 다만 가짜뉴스 또는 음모론에 경도돼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이 공중보건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이 됐으니 큰일 났다는 개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오스터 교수는 잘못된 정보를 어떻게 바로잡고, 보건 당국이 어떻게 해야 대중의 신뢰를 받는 공중보건 정책을 펼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데 글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부처를 막론하고, 행정부 전반이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점점 더 잃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터 교수도 보건 당국이 신뢰를 회복할 기적적인 비결을 귀띔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투명하게, 자세히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상기했습니다. 대부분 전염병에 대한 백신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새로 창궐한 전염병에 대항해 만든 신규 백신일수록 더 그렇죠. 부작용이 있어도 이를 최소화하고 백신을 통해 빠르게 집단 면역을 형성해 전염률, 궁극적으로 치사율을 낮춰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보건 당국은 이를 권고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뒤 정무적인 판단을 내리고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거죠.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던 유형의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창궐한 역병이었습니다. 과거 비슷한 사례와 비교하면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지만, 그래도 백신이 보급되기까지 1년 넘게 걸렸죠. 아직 쌓인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히 백신 접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정보의 공백은 대중의 불안을 조장하고, 잘못된 정보, 거짓말, 가짜뉴스가 활개 치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오스터 교수는 케네디 주니어 후보를 “가짜뉴스나 음모론을 믿는 멍청이”로 몰아세우는 일만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문제의 소지가 큰 주장을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인신공격하는 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런 사람이 보건 당국의 수장이 된다면, 더더욱 사실을 토대로 잘못된 주장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게 안에서 싸워나가야지 사실을 덮어놓고 입을 막으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과학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에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까?
좀 더 근본적인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달 초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J.D. 밴스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민주당 정부의 검열을 비판하며 두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하나가 2020년 선거 결과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것도 못 하게 하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부의 공중보건 정책에 대해 마찬가지로 의문을 제기하면 입을 다물게 억압하거나 심지어 처벌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부정선거 논란은 각급 법원에서 수십 차례 같은 판결을 내리며 일단락됐죠. 조직적인 부정선거는 없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믿고, 그런 주장을 펼 권리는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 원칙에 따라 보장됐고, 지금도 보장됩니다. (부정선거 주장을 믿고 폭력 사태를 일으킨 1월 6일 의사당 테러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만, 그마저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련해 형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사면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보건 당국이 팬데믹에 맞서 방역 수칙을 정하고 집행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검열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분명 순전히 정치적인 논란이 전부가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또는 데이터를 엉뚱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도출한 오답을 토대로 한 과학적으로 틀린 정책이라면, 공중보건 정책으로서 합격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 홍역 백신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일으킨다는 음모론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여러 차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럼에도 음모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죠. 수돗물에서 불소를 제거하는 것도,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우유를 권장하는 것도 모두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과학적으로 틀린 주장을 하는 사람을 향해 인신공격을 가하면 안 된다는 오스터 교수의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전문 지식을 많이 쌓은 이들과 보건 당국이 해야 할 일은 대중들의 오해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 잠재적인 피해를 줄이는 일이지, 그 대중들 면박을 주고 비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비교해 미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정말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국에선 과학적 실험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증되면, 혹은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펴보지도 못하고 차단되기 일쑤인데, 미국에선 그런 상황에도 상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건 표현의 자유이므로 보장되곤 합니다. 한국 기준에선 “틀린” 게 미국에선 “다른” 의견으로 취급될 때가 있죠. (반대로 “다른” 거로 봐줄 수 있는 걸 “틀린” 거로 속단하는 사회라면, 그 경직된 사고도 문제일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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