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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저지른 '엽기 성범죄'…피해자의 용기는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11.13 09:00|수정 : 2024.11.13 09:00

[귀에 쏙 취파] "부끄러움은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


지젤 펠리코 귀에 쏙 취파 

프랑스에 부는 바람, "내가 지젤 펠리코다"

지젤 펠리코. 올해 71살인 그녀는 올가을 프랑스 신문 사회면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중 하나입니다. 지젤은 50년을 함께 살며 3명의 자녀를 같이 낳아 키워온 동갑내기 남편 도미니크 펠리코로부터 충격적인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도미니크 펠리코는 2011년부터 10년간 지젤의 음식이나 술에 몰래 진정제 성분의 약을 넣어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인터넷으로 모집한 익명의 남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내인 지젤을 성폭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도미니크의 의도대로 그녀를 성폭행한 50명의 남성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성범죄 피해 여성인 지젤의 이름이 공개되고 그녀가 프랑스 사회의 유명 인사가 된 건, 이 사건의 재판이 '공개 재판'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검찰은 사건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공개 재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피고인들의 변호인들도 의뢰인의 '사생활 보호와 존엄성'을 이유로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젤은 일반적인 성범죄 피해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지젤의 변호인은 "우리는 침묵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지젤은 가능한 한 이 일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며, 수많은 피해자에게 '우리가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영감을 주길 원한다"는 겁니다. 지젤의 변호인은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재판은 공개로 진행되고 있고, 지젤의 전 남편 도미니크는 물론 공범으로 기소된 남성들 모두 공개 재판의 피고인석에 섰습니다. 도미니크는 인터넷으로 모집한 남성들에게 "아내가 부끄러워서 자는 척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도미니크의 집에 왔던 남성 중 단 두 명만이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깨달은 뒤 현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고, 이 남성들 사이의 추악한 비밀은 이후로도 계속 유지됐습니다.

도미니크는 2020년 슈퍼마켓에서 여성의 치마 밑을 촬영하다 적발됐고, 경찰이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전자장비를 압수해 추가 조사를 하게 된 뒤에야 이 흉악한 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몰래 탄 약에 취해 의식을 잃었던 지젤도 자신이 10년간 범죄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성범죄 가해자들의 면모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피고인들은 26세에서 74세 사이의 남성들로, 안정적인 직업과 가정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들 중 40%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정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54%는 범죄 경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70%는 여전히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며, 그게 성(性)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 도미니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여성단체들은 그녀가 동의했다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가해 남성들의 주장에는 아직도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점이 반영돼 있다고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바람이 불었던 2018년에도 프랑스에서는 카트린 드뇌브 등 문화계 유명 여성 인사 100인이 르몽드에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투고해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프랑스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사건의 실체를 공론화하는 것을 선택한 지젤 덕분에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엽기적 사건'의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범죄가 '무엇이 도미니크 펠리코 같은 괴물을 키워내고 여성 학대를 방치하게 만들고 있는가?'란 문제의식을 프랑스 사회에 던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재판이 '프랑스 남성성에 대한 재판'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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