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부친의 시신을 냉동고에 14개월간 숨긴 '냉동고 시신' 사건에서 소송 당사자가 숨진 사실을 알지 못하고 대법원이 판결을 선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출석 의무가 없는 사건의 경우 소송대리인이 정상적으로 선임돼 있다면 법원이 별도로 당사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오늘(11일) 언론에 해명했습니다.
숨진 A 씨는 2021년 6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4월 양쪽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재산분할을 명령했습니다.
이후 배우자 쪽에서 항소해 사건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 넘어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 역시 올해 4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문제는 항소심 소송 도중 A 씨가 사망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아들 B 씨가 작년 9월 집에 방문했다가 숨진 부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통상 이런 경우 사망 사실을 법원에 통지하고 소송이 종료되지만 B 씨는 부친의 사망을 법원에 알리지 않고 소송을 계속했습니다.
A 씨의 대리인과 소송 상대방인 배우자도 A 씨가 살아있는 줄 알고 소송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가사소송법 7조는 '변론기일 등에 소환을 받은 당사자는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출석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이 때문에 대리인이 선임돼 있다면 굳이 본인의 출석을 요구하지 않는 게 실무상 일반적입니다.
결국 B 씨가 부친의 사망을 숨기는 바람에 법원이 망자를 상대로 2심과 3심 판결을 한 셈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건이 있었던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도 "항소심 법원과 대법원이 A 씨의 사망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대법원은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에 대한 주민 조회 권한이 없어 직권으로 판결 선고 전 당사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소송대리인이 변론을 이어가는 사건에서 A 씨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 "당사자의 출석 의무를 강화하거나 판결 선고 시 당사자가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조항을 마련하는 것을 상정해 볼 수 있으나,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송법에 따라 A 씨의 배우자가 재심을 청구할 길은 열려 있습니다.
B 씨는 경찰의 실종 수사가 본격화하자 자수해 경기 이천경찰서에서 시체은닉 혐의로 수사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