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마린스키 발레단의 첫 동양인 단원으로 활동했던 발레리나 유지연 씨는 중학교 재학 시절인 1991년 러시아로 발레 유학을 떠나, 유명 발레학교인 바가노바 학교의 첫 외국인 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바가노바'는 왜 발레 교육의 대명사로 통하는지, 바가노바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아봅니다.
200킬로그램 이민 가방에 두루마리 휴지까지 싸 들고 갔고, 빵을 배급받으면 친구들과 나눠 먹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 학교를 다녔다는 유지연 씨로부터 유학 생활의 애환도 들어봤습니다.
김수현 기자 : 발레리나, 발레리노들한테 바가노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서 그게 도대체 뭔가 궁금합니다.
유지연 발레리나 : 아그리피나 바가노바라는 선생님 성함을 따서 바가노바 발레학교라고 지은 거고요. 이분은 이제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발레리나로 계셨다가 이제 가르치기 위해서 발레의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신 분이세요. 그래서 바가노바 발레 시스템이라고 해서 그 시스템으로 교사 양성을 하고 있고, 거의 지금 전 세계가 그래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이 바가노바 시스템을 기반으로 발레리나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히 그 발레계 큰 역사를 쓰신 분이고요.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부속 학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의 소수가 뽑혀서 들어가는 곳이 마린스키 발레단이에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 시스템이라는 게 어떤 걸 만드신 거예요? 예를 들어서.
유지연 발레리나 : 그 학교는 이제 1학년부터 8학년까지 과정으로 나뉘어 있고요. 이게 특수학교다 보니까 8학년을 졸업을 하면 이제 바로 발레단으로 입단을 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그런 수업이에요. 1학년이 8년 동안 그 나이에 맞게 어떤 동작을 베이스로 시작해서 그 단계 위에, 위에, 위에 올려서 그렇게 8단계로 나뉘어 있는 시스템을 만드신 거예요.
굉장히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무턱대고 어려운 동작부터 배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 서는 것부터 처음 몸통을 만드는 것부터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만들어지고 최대한으로 부상을 줄이고, 왜냐하면 발레라는 거 자체가 사실은 사람 몸에서 다 턴 아웃, 이게 사실은 무용수들 보면 척추가 거의 다 일자예요. 목도 일자 목이고. 사실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몸을 역으로 거슬러서 아름다운 라인을 만드는 그런 장르기 때문에 이게 자칫 잘못 배우거나 매일매일 잘못 연습하다 보면 사실 체격도 많이 변하고 오히려 더 울그락불그락한 그런 근육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리고 부상도 쉽게 당할 수 있고 많이 계속 아프고.
근데 그런 것들을 연구를 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게 바가노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선생님들도 와서 배우기도 하고 또 선생님들이 많이 나가서 외국에서 가르치시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요.
김수현 기자 : 그래서 바가노바 교수법 뭐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유지연 발레리나 : 맞아요.
김수현 기자 : 그렇구나. 그러면 그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아까 15살에 갔다고 했는데 그럼 중학교 다닐 때네요?
유지연 발레리나 : 제가 예원학교 중학교 2학년, 90년도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당시 장충동에 있던 국립극장 거기서 이제 연수원 같은? 그래서 마린스키 발레단 출신이신 바가노바 그때 당시에 학교 선생님이었던 두 분이 이제 한국에 오셔서. 요즘은 그런 게 되게 많아요. 그래서 이제 러시아에서 선생님들 자주 왔다 갔다 하시고 그랬는데 그때 당시에는 별로 그런 게 그게 많이 보급되지 않았어요.
김수현 기자 : 한국하고, 러시아하고 수교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유지연 발레리나 : 그게 딱 90년도예요. 그런 사례도 많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저는 이제 예원학교를 다니는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이니까 당연히 갔죠. 그때 그 국립발레단 발레단실이 어마어마하게 큰 홀이에요. 근데 많은 발레를 한다는 학생들이 다 모였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특강을 했는데, 온 선생님 두 분이 저를 너무 예쁘게 보시고 그렇게 해서 저한테 좀,
이병희 아나운서 : 제안을 하신 건가요?
유지연 발레리나 : 그렇죠. '여기서 물론 여기 좋은 선생님들도 많지만,'
김수현 기자 : 러시아에 와서?
유지연 발레리나 : '조금 아깝다. 그래서 좀 한번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 해서 저야 물론 바로 "그럼요!" 그랬는데, 이제 부모님들 조금 생각해 보시고... 그리고는 이제 돌아가셨는데 가셨다가 한 6개월 있다가 선생님의 와이프 되시는 분이 또 한국에 특강 하러 오셨다가 저한테 초청장을 들고 오셨어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 엄마의 질문이 '지연아, 너 꼭 가서 배우고 싶니?'였어요. 그래서 "네"라고 했죠. 그냥 그 질문 딱 하나 하시고 저의 대답도 바로,
김수현 기자 : 그럼 중3 때였네요?
유지연 발레리나 : 네. 그게 이제 이듬해 중3 때였는데, 저희는 3월부터 학년이 시작하잖아요. 근데 거기는 9월부터 시작하다 보니까 제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막 준비를 해가지고 9월에 맞춰서 들어갔어요. 그래서 이제 나중에는 예원학교에서 명예졸업을 했고... 그렇게 해서 다행이에요.
김수현 기자 : 중학교 졸업장을.
유지연 발레리나 : 국졸 될 뻔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