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배신의 서사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글 : 양선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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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옛 진나라가 망하고, 여섯 귀족 가문(육경)이 싸워 조·한·위 세 나라로 갈라졌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여섯 귀족 가문 중 최강자였던 지백이 조·한·위 세 집안과 힘을 합쳐 범 씨와 중행 씨를 멸망시켰다. 그는 돌아와 병사들을 몇 년간 쉬게 한 뒤 이번엔 한 씨에게 땅을 요구했다. 한 강자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가신 단규가 땅을 주라고 조언한다.
“지백이라는 위인은 이익을 좋아하고 오만방자합니다. 상대가 땅을 요구했는데 주지 않으면 군대를 한 씨 쪽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주군께선 땅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자는 재미를 붙여 앞으로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 중 듣지 않으려는 나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백은 반드시 그 나라에 무력을 쓸 것입니다. 그리만 되면 한은 재난을 피하고, 이후 사태의 변화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한강자는 이에 만 호에 이르는 고을을 지백에게 바쳤다. 지백은 좋아라하며 또 위가에 사람을 보내 토지를 내놓으라고 했다. 위의 선자가 주지 않으려고 하자 신하인 조가가 말했다.
“저자가 한에 땅을 내놓으라고 하자 한은 그것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위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지 않으면 지백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우리는 그 군사를 맞게 될 것입니다. 주느니만 못합니다.”
위의 선자도 일만 호에 달하는 고을을 지백에게 주었다. 지백이 조에 사람을 보내 채와 고랑 땅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의 양자는 주지 않았다. 지백은 한·위와 은밀히 맹약을 맺고 앞으로 조를 치자고 했다. 조 양자가 가신 장맹담을 불러 말했다.
“지백이라는 위인은 밝은 곳에선 친한 척하고, 어두운 데로만 들어가면 거리를 두는 자요. 한과 위에는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고, 나한테는 보내지 않소. 그자가 나를 치는 건 확실하오. 이제 나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장맹담이 말했다.
“동알우라고 선대의 재주 있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가 진양을 잘 다스렸고, 그 뒤를 이은 윤탁 역시 잘 다스려 아직 그 땅에 교화가 남아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진양을 근거지로 하십시오.”
그리하여 조양자는 진양으로 들어가 3년 간 버틸 식량을 준비하고, 성곽을 수리하고, 무기를 정비했다.
과연 세 나라 동맹군이 쳐들어왔다. 동맹군은 진양의 성벽을 공격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군대로 성을 포위한 채 진양천의 강둑을 끊어 성안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성안 백성들은 새둥지처럼 높이 집을 짓고, 솥을 매달아 밥을 지었다. 돈과 식량이 바닥났고, 병사와 관리들도 지쳤다.
조양자가 장맹담에게 말했다.
“식량과 재력도 다했고, 사대부도 지쳐 병들었고, 나도 지킬 수 없을까 봐 두렵소. 항복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에 항복하는 게 좋겠소?”
장맹담은 말했다.
“망할 것을 보존할 수 없거나 위험한 것은 안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지혜라는 게 왜 필요하겠습니까. 주군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은밀히 빠져나가 한과 위의 군주를 뵙겠습니다.”
그러고서 장맹담은 한·위의 군주를 만나 말했다.
“저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에 대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지백은 두 군주를 끌고 와 조를 쳤습니다. 조는 곧 망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조가 망하면 두 군주는 그다음 차례입니다.”
두 군주는 말했다.
“나도 그러리라 알고 있소. 그렇다 하더라도 지백이란 위인은 거칠고 막돼먹은 데다 인정이라곤 없소. 우리가 일을 도모했다 발각되면 그 화가 반드시 미칠 것인데 어찌하면 좋소?”
장맹담이 말했다.
“이 모의는 두 군주의 입에서 나와 제 귀로 들어갔을 뿐, 다른 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두 군주는 장맹담과 한·위·조 세 나라 군대가 돌아서기로 약조했다. 그리고 기일을 정하고 한밤중에 다시 진양성으로 들어가 두 군주와의 반역 약속을 양자에게 보고했다. 양자는 크게 기뻐 장맹담에게 두 번 절하였다.
한강자와 위선자, 두 군주는 장맹담과 밀약한 후 지백을 보러 갔다가 지백의 친척인 대부 지과를 원문 밖에서만 났다. 지과는 그들의 안색을 이상하게 여기고, 안으로 들어가 지백을 만나 말했다.
“두 군주의 얼굴을 보니 장차 변심할 듯합니다.”
“어찌하여?”
지백이 묻자 지과는 대답했다.
“행동이 들떠 있어 평상시와 같지 않습니다. 주군께서 먼저 손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에 지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두 군주와 굳게 약속했다. 조를 깨부수면 그 땅을 셋으로 나누기로 했다. 과인이 그들을 친히 여기기로 했는데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진양을 포위한 지 3년이다. 조만간 성이 함락되면 그 이익을 나눌 것인데 어찌 다른 마음이 들겠는가.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말라.”
이튿날 두 군주는 조회하고, 나오다 다시 지과를 원문에서 만났다. 지과는 들어가 지백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어제 했던 제 말을 두 군주에게 말했습니까?”
“어찌 알았는가?”
“오늘 두 군주를 조회하고 나갈 때 저를 보더니 안색이 변하고 문득 자기 신하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반드시 변심한 것이니 그들을 죽이거나 더 가까이하십시오.”
“어떻게 더 가까이하라는 말인가?”
“위선자의 책사는 조과이고, 한강자의 책사는 단규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군주들의 계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 두 군주와 약속하시기를 조나라를 쳐부수면 그 두 사람에게 각 일만 호의 고을을 봉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두 군주의 마음을 묶어둘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의 땅을 깨면 셋으로 나눠야 하는데, 또 두 사람한테 만 가구를 봉한다면 나는 얻는 것이 너무 없다. 안 된다.”
지과는 지백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도망쳐 나와 성을 보 씨로 바꾸었다.
한편 정한 기일의 밤이 되자 조 씨가 제방을 지키던 자를 죽이고, 강물을 지백의 군대 쪽으로 돌렸다. 지백의 군사들은 물난리를 막아보려고 하는데 한과 위가 양쪽에서 협공을 해왔다. 조양자는 전면으로 덮쳐 지백 군대를 크게 무너뜨리고, 지백을 생포했다. 지백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군대는 깨어지고, 나라는 셋으로 쪼개어져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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