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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같은 작가 데려와라" 콧대 높이다가…180도 바뀐 사연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10.28 09:00|수정 : 2024.10.28 09:00

[더 골라듣는 뉴스룸]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노벨상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이 중요한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출판사들로부터 2만 달러 수준의 고액 선인세를 받는 한국 작가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는데요,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다만 번역가가 부족해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의 과제로, 지속적인 번역 지원 작업뿐 아니라 번역가 양성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최영아 아나운서 :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한강 작가에 대한 번역도 물밀듯이 들어올 것 같고,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가를 번역하고 싶어 하는 출판사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가 돼야 할 것 같네요. 저희가 그 정도 인력이 있습니까?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 제일 큰 문제가 수요는 있는데 번역자가 없는 겁니다. 제가 번역원 가서 했던 아주 재밌는 일이 해외 메이저급 출판사나 주목받는 출판사의 편집자들을 불러서 일주일 동안 한국에 머물게 하면서 한국 작가 출판인, 저작권을 가지고 출판사들하고 미팅하는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생각보다 좋은 출판사 편집자들이 많이 왔어요.

그중에 기억나는 게 독일 출판사인데요. 2005년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이었어요. 저희 미션은 '독일 메이저 출판사에서 한국 문학을 내라'였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보따리를 들고 갔는데, 독일 최고의 출판사인 주어캄프에 가서 '95년에 낸 고은 시집 다시 내자'고 했습니다. 안 된대요. 이틀을 붙잡고 매달렸더니 내주겠다고 해서 '한 권만 더 내자'고 해서 나온 게 박완서, 이창동, 최인석의 중편집, 이문열의 '시인'을 주어캄프에서 내기로 했는데 그거 갖고 안 되잖아요.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유명한 출판사들을 찾아갔더니 예약하고 왔냐는 거예요. 예약했을 리가 없죠. '예약은 안 했는데 이런 거 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예약하고 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무라카미 하루키 읽어봤는데 하루키 같은 작가 가지고 와라'. 그때 정말 '내가 독일에 다시 오면 뭐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렇게 홀대했던 두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왔어요. 일주일씩 출장을 내고요. 그래서 제가 인사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했더니 "그건 내 전임자들 얘기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정도로 환경은 바뀌었고요.

아까 한국 문학의 여건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선인세 2만 달러를 받는다는 건 굉장한 거거든요. 보통 노벨상 작가 수준이 되면 2만 달러의 선인세, 그러니까 책 찍기도 전에 무조건 2만 달러를 먼저 계약금으로 주는 겁니다. 굉장히 큰돈이죠. 그걸 받는 작가가 10명이 넘습니다. 그만큼 인기가 있어요.

김수현 기자 : 그래요? 해외 출판사에서요?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 해외 출판사에서요.

최영아 아나운서 : 누구누구인지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한강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 영업상 비밀이라서 구체적으로 말씀은 못 드리지만 그런 작가가 두 자리 숫자예요.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거고요. 1년에 200종 이상이 나오고, 실제로 대산재단이나 번역원에 번역 출판하겠다고 지원 신청 내는 건 300건이 넘어요. 근데 번역자가 없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번역자가 손꼽는 수준인 겁니다.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뭐냐 그러면 저는 딱 두 가지만 얘기합니다. 하나는 지금처럼 번역 출판을 지속적으로 계속 활성화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문학 자체가 세계문학의 일원으로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번역가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제가 번역원장할 때 번역 아카데미라는 번역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있어요. 이거를 대학원대학으로 바꾸려고 그랬는데 난관이 많더라고요. 바꾸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제가 부임을 해서 번역 아카데미 졸업생 전수조사를 했더니 절반이 어디 가는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영문과나 불문과 다닐 때 '내가 번역할 거다'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은 그 과에서 탑 오브 탑입니다. 번역 아카데미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의 80% 이상은 해외 한국학과 학생 중에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옵니다. 2년 동안 공부하는데 갈 자리가 없는 거예요. 파트타임으로 번역하거나 다시 다른 대학의 대학원을 가야 하는 식인 거예요. 이거는 낭비다.

그래서 제가 부임하면서 문체부 장관님한테 얘기했거든요. 번역 대학원대학을 하고 싶다. 왜 하려고 그러냬요. "한국에도 이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당시 일본 정신대를 지지했던 미국 램지어 교수를 다들 욕하는데 저는 그 사람이 부럽습니다." 그랬더니 장관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화를 내십니다. "램지어는 일본어를 공부했고, 일본 돈으로 먹고삽니다. 그 사람이 일본을 지지하는 게 우리는 밉지만, 일본 입장이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제가 부러운 것은 램지어 같은 사람을 키워내는 일본의 시스템이 부럽다는 겁니다."라고 말했죠.

우리도 외국에서 공부하면 대부분 돌아오잖아요. 돌아와서 한국 대학에 자리 잡고 문화기관에 종사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기 공부한 걸로 먹고 산단 말이에요. 한국에서도 램지어 같은 사람을 키워내서 번역대학원에서 학위를 주면, 그 사람들이 공부하고 자기 본국에 가서 교수나 문화기관의 종사자가 되면, 죽을 때까지 한국문학 갖고 얘기합니다. 민간에 한류 포스트가 생기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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