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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도' 없는 '무도실무관'

사공성근 기자

입력 : 2024.10.15 16:44|수정 : 2024.10.15 17:20


무도(武道) : 무예 및 무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각종 무예와 무술을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화 '무도실무관'이 개봉했을 때, '무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곧바로 무도(武道)와 연결 짓지 못했습니다. 전투비행사, 경찰특공대, 강력반 형사 등 다른 특수한 직군의 수식어에 비해서 '무도'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종영한 유명 예능프로그램이 먼저 나올 정도니까요. 영화를 통해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됐고, 취재와 인터뷰를 나서면서 이 직업의 실태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지난 <8뉴스>에 담지 못했던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의 다양한 쟁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무도실무관'에서 현직 무도실무관 역을 맡은 배우 김우빈 (화면제공 : 넷플릭스)

3단 이상의 유단자만 가능한 직업


무도실무관은 출소한 전과자들을 관리하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의 공무직 근로자입니다. 법무부 공무원인 보호관찰관을 도와 전과자들 중에서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주요 대상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준법지원센터 또는 보호관찰소와 계약을 통해 고용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국에 170명이 있습니다. 이 직업 앞에 '무도'가 붙는 이유는 무도 3단 이상이 지원 자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서울보호관찰소의 무도실무관 채용 공고를 보면, 학력과 경력에는 제한이 없지만 무도 자격 3단 이상을 필수 자격 요건으로 명시했습니다. 무도의 종류로는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 4개 종목으로 제한하고 합산 3단이 아닌 단일 종목 3단 이상을 필요 자격으로 정해 놨습니다. 영화에서도 배우 김우빈이 맡은 주인공 '이정도'는 태권도와 검도, 유도의 합이 9단인 무도 실력자였습니다.

2024년도 서울보호관찰소 무도실무관 채용 공고 일부
이렇게 무도실무관이 필요한 배경에는 이들이 관리하는 대상자가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과자들을 재범 가능성이 높은 대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전자발찌를 착용한 대상자들은 법원이 재범의 위험성과 관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결한 대상자들입니다. 무도실무관 채용 공고를 보면 담당 예정 직무에 △전자 감독 경보 발생 시 현장 출동, 증거 수집, 훼손자 검거 보조 △상시 출동 대기, 특별관리대상자 관리 및 출입제한구역 순찰 △구인 대상자 계호 및 유치 등 보호관찰관소 업무 보조라고 적혀있습니다. 보호관찰관들이 사법 경찰의 지휘를 가지지만, 어디까지나 일반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에 보다 무도에 능한 인력을 뽑아 관찰관 업무를 보조하게 하려고 지난 2013년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이 생겼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2012년 부착명령 소급 적용에 대한 합헌 결정으로 대상자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이에 상응하는 인력 증원이 어려워 보호관찰관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무도실무관을 채용했다"고 채용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무도'

 

영화 속 무도실무관은 태권도의 화려한 발차기와 유도의 업어치기, 검도의 정확한 타격으로 전자발찌 대상자들을 제압합니다. 때로는 전기충격기로 단번에 상황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무도실무관들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청주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무도실무관 1기 안병헌 실무관
각종 예능과 뉴스 인터뷰 등을 통해서 알려진 안병헌 무도실무관은 지난 2013년 채용된 무도실무관 1기입니다. 안 실무관은 태권도 4단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발차기를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안 실무관은 "술 취한 대상자가 있어서 귀가시키려고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는데 '야 너희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라며 갑자기 시민들에게 달려가는 일이 있었다"라며 한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안 실무관은 당시 술에 취한 대상자를 체포술로 제압했는데, 얼마 뒤 직권남용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안 실무관이 체포술이 아니라 실제 발차기를 사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안 실무관은 "무도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영화처럼 상대방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중에 경찰 조사를 받거나 나아가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다른 한 실무관은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지시에 불응하던 대상자가 갑자기 112 신고를 한 적이 있다"라며 "경찰에 전화해서 '내가 전자발찌 착용자인데 담당 직원이 폭언하고 폭행을 행사하려고 하니까 출동해 달라'고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실에서 무도를 사용할 상황이 오잖아요? 보통은 경찰을 불러요. 저희가 주도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가 없어요"라고도 밝혔습니다.

영화 '무도실무관'에서 무도를 활용해 전자발찌 착용자를 제압하는 모습
이처럼 무도실무관들이 적극적으로 무도를 행사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경찰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범인 제압과는 다릅니다. 무도실무관들은 계약직 근로자라 무도를 행사할 권한이나 공권력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무도실무관과 함께 일하는 보호관찰관은 △사법경찰직무법에 따라 사법경찰의 신분을 가집니다. 또 △보호관찰법에 따라 전자발찌 대상자를 구인할 권한도 있습니다. △전자장치부착법에는 보호관찰관이 대상자들을 지도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가진다고도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무도실무관은 그 어디에서도 공무를 집행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결국 무도실무관의 무도는 이름 뿐인 상황입니다.
 

승진·승급·수당도 없는 '계약직'


지휘와 권한뿐 아니라 처우도 형편없습니다. 11년 차 안 실무관은 세후 280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습니다. 휴일과 야간근무수당을 모두 합친 금액입니다. 그런데 올해 새로 뽑는 무도 실무관 공고에도 '보수 : 월 280만 원 상당'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실상 10년 선배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안 실무관은 "올해 들어온 후배가 야근을 조금 더 서게 되면, 저보다 많이 받게 됩니다. 저희는 호봉 책정이 안 됩니다. 물가 상승률 정도로만 오를 뿐입니다. 10년 전에도 저는 200만 원(초반)을 받았고 지금도 200만 원(후반)을 받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무도실무관은 승진도 승급도 없습니다. 교육 훈련 제도 대상도 아니며, 포상 및 표창의 대상도 아닙니다. 위험근무수당, 특근비, 가족수당, 연가보상비, 출장비. 성과급 등 각종 보너스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심지어 지급되는 장비도 보호관찰관과 무도실무관이 다릅니다. 관찰관에는 수갑, 포승, 보호대, 전자충격기, 가스총 등이 지급되지만 무도실무관은 방호 장비인 방검복과 방검 장비만 지급되고 있습니다. 11년 전 무도실무관 1기는 모두 42명이 선발됐지만, 지금 남은 인원은 10여 명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이 열악한 처우 탓에 경력을 쌓은 뒤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입니다. 무도실무관들은 당장 신분이 공무원으로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처우가 개선돼 동료들이 나가지 않는 직장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시민 입장에서도 실무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 자리를 지키고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대상자들 관리도 더 잘 되고, 동네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요?

무도실무관 1명이 감독·관리해야 하는 전자팔찌 대상자응 17.6명에 달한다.

관심으로 끝나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해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자발찌 착용자 수는 2008년 151명 → 2024년 8월 4,270명으로 28배나 늘었습니다. 이에 비해 전담직원(보호관찰관 + 무도실무관 등)의 수는 460명에 불과합니다. 1명이 대상자 17.6명을 감독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자발찌 대상자 중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196명에 달하고, 나머지 강도 등 범죄를 더하면 재범자는 323명에 이릅니다.

영화와 보도,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무도실무관의 현실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바뀌는 게 없다면, 오히려 상황은 마이너스일 겁니다.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도실무관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전자발찌 대상자들이 실무관들에게 무력 행사나 지도 등의 권한이 없다는 걸 점차 알게 되면, 현장 업무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무도실무관들이 최근의 관심과 주목을 반기면서도 걱정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다행인 점은 국회가 응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일단 무도실무관 직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입니다. 박 의원은 "전자장치부착법이나 보호관찰법에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무도실무관도 보호관찰관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처우 개선에 대해서도 입법으로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무도실무관

"화두를 던져준 고마운 영화"


영화 속 김우빈과 현실의 무도실무관은 확연히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액션을 강조하며 무도실무관을 영웅으로 그려졌지만,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주먹을 던질 수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실과 다르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는 실제 문제를 더 크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했던 현직 무도실무관들은 하나같이 감독과 배우들에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한 무도실무관은 "현실에서는 액션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현실이라 영화를 보면서 속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감독과 배우들이 전과자들을 마주하는 무도실무관들의 감정선을 잘 표현해주셨다. 영화를 통해 직업이 알려지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실무관은 "알아주지 않아도 일상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하고 있는 일이다. 사회 안전망에 일조하는 우리의 일상을 좋게 비춰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무도실무관은 국제적 흥행 덕에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겠지만, 후속편이 나올 쯤에는 현실 여건이 조금은 영화를 따라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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