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군주의 제일 원칙은 입을 다무는 것 (글 : 양선희 소설가)
#1
감무가 진나라 혜왕의 재상으로 있었는데, 혜왕은 공손연을 총애하여 그와 비밀스럽게 말을 나누면서 "내가 앞으로 그대를 재상으로 삼겠소"라고 했다.
감무의 사람이 문틈에 구멍을 내서 이를 듣고는, 감무에게 고했다. 감무는 입궐해 왕을 만나서 말했다.
"왕께서 현명한 재상을 얻으셨더군요. 제가 감히 재배하며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왕이 되물었다.
"내가 그대에게 나라를 맡겼는데 어떻게 다시 현명한 재상을 얻었다 하십니까?"
"장차 서수(공손연)를 재상으로 하신다더군요."
"그대가 어떻게 그것을 들었소?"
"서수가 제게 말했으니 알지요."
왕은 서수가 비밀을 누설하였다며 노하여 그를 쫓아냈다.
#2
당계공이 소후에게 말했다.
"지금 천금이 나가는 옥 술잔이 있는데 뚫려서 밑바닥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소후가 말했다.
"불가하지요."
"유약도 바르지 않은 질그릇이 새지 않는다면 술을 담을 수 있습니까?"
"가능하지요."
"대체 질그릇은 천한 것이어도 새지 않으면 술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록 천금이나 되는 옥잔은 대단히 비싸지만, 새면 물을 담을 수 없는데 누가 거기에 음료를 담으려고 하겠습니까. 지금 군주 된 사람이 신하들이 고한 말을 누설하는 것은 이처럼 바닥 없는 옥 술잔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훌륭한 지모가 있어도 그 술수를 다할 수 없는 것은 누설 때문입니다."
이에 소후는 이후에 천하의 대사를 펴고자 할 때 혼자서 잠을 자지 않은 적이 없다. 잠꼬대라도 하여 다른 사람이 그 계획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3
신불해(법가 사상가)가 말했다.
말하는 것을 삼가라. 그러면 사람들은 너에게 맞추려 한다. 행동을 삼가라. 사람들이 너를 따르려고 할 것이다. 네가 아는 것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너에게 숨기려 할 것이고, 무지해 보이면 네 마음을 헤아려 보며 속이려 들 것이다. 네가 알면 사람들은 숨기려 하고 네가 모르면 사람들은 너를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오직 무위함으로써 살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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