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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 한마디에 370억 사업이 날아갔다…떡볶이 가맹지사의 절규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10.02 09:02|수정 : 2024.10.02 09:02

[귀에 쏙 취파] 귀에 쏙! 귀로 듣는 취재파일


가맹지사 귀에 쏙 취파 

"신뢰 깨졌다" 한마디에 '14년 사업'이 날아갔다

부부는 대형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가맹<지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가맹점 수 기준 국내 1위 업체입니다. 부부는 이 프랜차이즈의 전국 700여 개의 가맹점 중 400여 개를 관리했습니다. 이 프랜차이즈 소속 가맹지사 중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아내의 왼쪽 팔목에는 '24.04.11'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물건 겉포장에 찍혀있는 바코드의 날짜 같았습니다. 무슨 의미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날을 잊지 않으려고요."

팔목에 새겨진 2024년 4월 11일, 본사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계약 종료 통보서였습니다.

계약 종료 예정일은 다섯 달 뒤인 9월 12일. 2010년부터 14년 동안 꾸려온 사업을 9월 12일 이후로는 접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아내는 하소연했습니다. "어떻게 매출 370억 원 하는 회사를 내용증명 한 통으로 날릴 수 있어요? 우리 직원들은 어떻게 하고 대출은 어떻게 해요? 지난 14년 15년 여기에 목숨 바치고 살았어요. 이렇게 하루 아침에 날아가도 되는 거예요?"

기자가 이 부부를 처음 만난 건 8월 초였습니다. 본사의 계약 종료 통보가 일방적이고 억울하다며 대구지방법원에 '계약 해지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5일. 법원은 부부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본사가 제기한 계약 갱신 거절 사유를 대부분 인정한 겁니다.

가맹 '지사'를 운영하는 부부는 이 사유 대부분을 '사실과 다르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공방'과 '분쟁'의 영역. 하지만 법원은 이 자체를 두고 "계약 이행이 어려운 상호 신뢰 관계 훼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계약은 종료됐습니다.

1주일에 4번, 이른 새벽부터 전국 400여 곳의 가맹점으로 각종 식자재를 배송하기 위해 줄지어 드나들던 물류 트럭들도 9월 10일 이후 끊겼습니다. 남은 건 더 이상 가동이 어려운 냉동 창고,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 그리고 100억 원이 넘는 빚이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8월 초 인터뷰 당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사 말대로 9월 12일에 나가라고 해서 나가면 저희 회사는 부도가 나요. 대출이 많고,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요. 직원들도 다 일자리를 잃게 돼요." 오지 않길 바랐던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가처분 기각 결정을 한 재판부의 결정문 말미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맹지사가 입게 될 손해는 금전적 손해배상에 의해 전보될 수 있다."

재판부의 말처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계약 종료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보전 받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소송에는 시간이 걸리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해지된 계약이 정상화되진 않습니다. 부부가 당장의 손해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가맹지사는 일반 소비자의 눈엔 잘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은 보통 브랜드와 사업권을 가진 본사, 즉 가맹<본부>와 일정 비용을 내고 브랜드 운영권을 사서 사업을 하는 가맹점이 협력하는 구조인데, 가맹<지사>는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있는 일종의 '연결고리'입니다.

본사와 '지사 계약'을 맺은 가맹 지사는 본사 대신 가맹점을 모집, 관리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나 수익의 일부를 나눠 받습니다. 가맹점 <모집>은 지사가 하고 계약은 본사와 맺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본사는 지역을 나눠 지사를 두고 해당 지역의 가맹점 영업과 관리를 맡깁니다. 가맹사업법에서는 '가맹 <지역본부>'라고 정의합니다.

가맹사업법은, 가맹'점'의 경우는 우선 표준계약서가 있고, 계약갱신권을 10년까지 법이 보장합니다. 계약 위반 사실이 발생해도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이 법은 가맹<점주>에게만 적용됩니다. 가맹<지사>는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다시 문제의 떡볶이 프랜차이즈 사례로 돌아가 볼까요.

법원 결정문을 토대로 보면, 본사와 A 씨 부부가 운영하던 가맹지사는 2010년에 첫 지사 계약을 맺었습니다.

부부는 "이 프랜차이즈는 대구에서 시작한 작은 떡볶이 브랜드였고, 우리가 지사 사업을 시작할 당시 가맹점은 44곳에 불과했다. 우리가 수도권에 지사를 내고 가맹점을 모집하기 시작하면서 전국화됐다"라고 주장합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계약서를 썼습니다. 마지막 계약서는 2018년 작성했고 계약 기간은 2년이었습니다. 그 후 계약은 묵시적으로 연장돼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본사가 계약을 갑자기 해지한 이유는 뭐였을까요?

본사는 이 부부의 가맹지사가 ▶본사의 상표를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했고 ▶계약서상 겸업 금지 의무를 위반했으며 ▶지속적인 미수금이 발생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가맹지사 대표인 A 씨가 지분을 갖고 있는 또 다른 회사가 취급하는 제품에 허락 없이 본사의 상표를 붙이거나, 가맹점에게만 보내야 하는 식재료를 이곳에서 제조 판매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A 씨 부부는 '가맹점을 더 늘리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기업 구내식당 납품을 뚫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본사에 물품을 사서 납품하는 구조니까, 새로운 납품처가 뚫리면 본사 매출도 올려주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본사 대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승인을 받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명이 부족하다'라고 봤습니다.

가맹지사가 물건을 먼저 받아가고 매번 대금을 늦게 지불했다는 <미수금>건에 대해서는 양측 주장이 엇갈립니다. 본사는 <선입금>이 원칙이었다고 말하고 가맹지사는 <본사와 합의하에 3주 뒤 대금을 입금한 것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재판부는 3주 간격으로 지사가 입금한 내역보다는 선입금이 원칙이라고 적힌 계약서를 더 중요하게 판단했습니다.

이 부부의 가맹지사 측도 일부 귀책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상표권 계약 내용을 넘어서는 도용 행위라는 본사의 주장에 "실수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사가 계약 종료 통보서를 보내기 몇 주 전에 진행된 한 대기업 주최 푸드페스타 행사장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가맹점을 더 늘리기 어려운 한계에 닥친 상황에서 대기업이나 군부대 같은 곳에 납품을 하려고 열심히 영업을 뛰다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발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되면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면 되는 거였는데 바로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왔다고 했습니다.

본사에 입장을 물었더니, "해당 행위는 그 성격상 시정이 불가한 것으로, 중대한 계약 위반 사항에 해당할 뿐 아니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심각한 위법 행위"라는 서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에게는 동생이 있습니다. 국내외 가맹사업을 담당하며 가맹 지사장들을 직접 만났고 개인 통장으로 돈을 받고, 또 내주기도 했습니다. A 씨 부부와 직원들은 그를 <작은 사장> 또는 <부대표>라고 불렀습니다.

부부는 기자에게 녹취 몇 개를 들려줬습니다. 대구에 사는 그가 서울에 와서 타고 다닐 차가 필요하다고 요구해 차를 사서 보내주는 과정이 담긴 녹취도 있었고, "당장 내일까지 돈 2억 원을 보내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부부는, 그의 ATM기 신세였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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