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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②] 부천 화재 호텔 '판박이 숙박시설' 수두룩…재발 막을 수 있을까

신용일 기자

입력 : 2024.09.23 15:33|수정 : 2024.09.23 15:34


지난달 22일 경기 부천 원미구 호텔 객실 810호에서 시작된 불씨가 참사가 된 이유는 크게 호텔 밖과 안의 문제로 나뉩니다. 사망자 7명 중 2명은 같은 층 807호에서 호텔 외부에 설치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실내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죽음을 불렀습니다. 에어메트의 적절성에 대해선 <취재파일➀ 화재 때 인명피해 못 막은 에어매트…규격도 매뉴얼도 '제각각'(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806530)>에서 상세히 다뤘습니다.

다른 사망자 5명은 발화지점과 가까운 8, 9층 투숙객들입니다. 발화지점 근처로 객실을 잡은 게 무고한 사망의 원인이 된 겁니다. 저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독자 어느 누구라도 '단지 운이 나빠' 참변을 당할 수 있단 뜻입니다.

부천 호텔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방화문은 제 역할을 못 한 데다 투숙객들은 로프를 타고 탈출할 수 있는 완강기를 써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비상 상황에서 호텔 측의 대피 안내도 부족했던 걸로 보입니다.

경찰은 이런 문제들을 규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발생 닷새 만에 수사관 19명을 투입해 해당 호텔과 업주·직원의 주거지, 호텔 소방 점검을 맡았던 업체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관련자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과거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건 문제 해결의 시작이지만, 그것 만으로 미래의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순 없을 겁니다. 과연 그 문제의 부천 호텔이 '예외적으로' 화재에 취약했던 건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약 부천 호텔과 마찬가지로 다른 숙박시설에서도 화재 예방과 대응 시스템에 구멍이 여전하다면, '참사 이후'를 수사에만 맡길 순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 숙박업소들, '부천 호텔'과 다를 바 없었다


서울 영등포구와 강서구, 종로구의 소위 호텔촌과 모텔촌에 있는 호텔, 모텔, 무인텔 6곳에 들어가 봤습니다. 대상 숙박시설은 무작위로 골랐습니다. 공통점은 15년 이상 된 곳이라는 점 뿐. 누구나 언제든 별 고민 없이 묵을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숙박시설들이었습니다.

부천 호텔과는 다르길 바랐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다른 숙박시설들은 안전했으면 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처음으로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 들어섰지만, 부천 호텔 화재에서 드러났던 객실 안팎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포착됐습니다. 판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객실 내부에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복도에 방화문도 없었습니다. 완강기도 객실 안엔 전무했고 유사시 이동에 도움을 주는 휴대용 손전등 불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방화문만 제대로 있어도 골든타임 확보"


객실의 화재 대응 시스템을 따져보는 건 의외로 간단합니다. 객실과 복도 천장에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는지, 화재경보기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방화문(객실 문 또는 복도와 계단 사이에 설치)은 닫혀있거나 화재 시 닫히도록 기능하는지 그리고 객실 안에 완강기는 구비돼 있는 지가 핵심입니다.

이것들만 갖춰져도 불이 났을 때 생존 가능성은 대폭 올라갈 겁니다. 스프링클러로 초기 진압을 하면서 화재경보기로 주변 객실에 화재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방화문이 화재 확산을 막아줘 탈출 시간을 확보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특히 "방화문만 제대로 설치됐어도 최소 30분 이상 화염이나 연기를 차단시켜준다"며 "불이 났을 때 골든타임을 확보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탈출을 못했을 경우 최후의 수단이 완강기입니다. 완강기는 고층에서 불이 났을 때 몸에 로프를 매고 건물 밖으로 천천히 내려올 수 있게 도와주는 비상용 기구입니다. 완강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취재하며 현장에서 만나 본 투숙객들 중에도 부천 화재 이후 완강기 사용법을 처음으로 찾아봤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취재진이 확인한 호텔에서 불이 났다면 참변은 반복될 게 뻔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 본 숙박시설에서 위 점검 요소들을 모두 갖춘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규정에 따라 객실 내부에 간이 완강기 2개가 제대로 구비된 곳은 한 곳도 없었고 스프링클러가 객실에 있는 곳도 전무했습니다. 화재경보기는 오작동을 막겠다는 이유로 센서에 휴지나 스티커를 붙여 놓은 곳이 절반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휴대용 손전등 역시 파손됐거나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 6곳 중 4곳이었습니다.

숙박시설 화재 하루 한 건 꼴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새 숙박시설에서 난 화재만 1843건, 1년 평균 368건으로 하루에 한 건씩 나는 셈입니다. 특히 숙박시설의 경우 사람이 밀집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라 화재 2건 당 인명피해가 1명씩 나는 걸로 조사됐는데, 아파트 등 주거시설, 식당, 목욕탕 등 17개 업종 중에서도 피해 규모가 가장 큽니다. 이번 화재 참사를 단순한 사건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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