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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는 꽝이었지만 대신 당첨된 이것…'깜짝 놀랄 조합'을 알려드립니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9.22 09:01|수정 : 2024.09.22 09:01

[스프카세] 임승수의 와인과 음식이 만나는 순간 ② 샤르도네와 돼지고기


임승수 스프카세 썸네일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가성비 와인과 배달 음식의 페어링 체험담을 들려드립니다.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각별해서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중국, 베트남과 더불어 세계 1위를 다툴 정도다. 나 또한 소고기나 닭고기보다 돼지고기를 훨씬 자주 먹는다. 일단 가격이 소고기보다 훨씬 착하기 때문인데, 돼지가 소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번식해 사육 기간이 짧은 데다가 사료비도 적게 들어서 그렇단다. 가격이라면 닭고기가 더 저렴하지 않냐고? 치킨은 별미 느낌이 강하다면 돼지는 집밥 반찬으로 오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한국인의 일상 식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대한민국 와인 애호가로서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인 와인을 파악하는 일은 슬기로운 와인 생활에 있어서 관건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임승수 스프카세
와인에 갓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절 시도했던 돼지고기와 와인의 페어링은 처참한 실패였다. 당시 나는 미국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농익은 검붉은 과실 향이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가운데 입에서는 꽉 찬 바디감을 선사하는 그 원초적 강렬함. 거기다가 초콜릿이나 연유 향이 기분 좋게 배어 있는 게 참으로 요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 와인에는 고기라는 얘기에만 의존해 무지성으로 삼겹살 구이를 곁들였는데, 나파밸리 와인의 초콜릿 및 연유 향이 삼겹살의 느끼한 풍미와 맞물려 욕지기가 올라올 정도로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단선적 지식의 폐해는 우생학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와인-음식 페어링에도 존재한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 줄 와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미치니 눈에 들어온 것은 이탈리아의 레드 와인인 산지오베제였다. 이 와인의 높은 산미와 존재감 있는 타닌은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상큼하고 깔끔하게 중화해 주고, 과하지 않은 바디감은 소고기에 비해 다소 가벼운 돼지고기의 질감과 잘 어우러진다. 예전에는 신맛과 타닌이 도드라지는 산지오베제 와인에서 종종 중간이 비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수비(타닌)와 공격(신맛)만 있고 미드필더가 비어있는 뻥축구랄까. 하지만 지금은 이 공간이 음식을 위한 여백임을 안다. 와인은 음식과의 만남을 통해 완전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돼지고기의 영혼의 동반자를 찾아 헤매다가 의외의 카테고리(화이트 와인)에서 찰떡궁합인 녀석을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샤르도네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이지만 화이트 와인에는 해산물이라는 판에 박힌 공식에 얽매여 한동안 육류와 함께 마실 생각 자체를 못 했다. 게다가 갓 와인에 빠져들었던 시기에는 와인 하면 역시 레드라는 요상한 통념에 사로잡혀 화이트 와인 자체에 잘 손이 가지 않기도 했고.

샤르도네를 돼지고기와 먹게 된 계기는 와인 관련 앱 덕분이었다. 와인 애호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비비노Vivino 앱은 와인을 검색하면 'Food that goes well with this wine'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어서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해 준다. 마침 구매한 샤르도네 와인을 비비노 앱으로 검색하니 제일 먼저 추천하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그렇게 해서 돼지고기와 샤르도네의 궁합을 처음 경험했는데,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산지오베제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그 놀라운 시너지 효과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인 샤르도네 ⓒ 임승수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불판에 배달앱으로 주문한 모 유명 음식점의 돼지 등심덧살을 한 덩이씩 올려놓는다. 적당하게 익으면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주는데, 어느덧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의 온기를 타고 인절미 콩가루처럼 고소한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피어오른다. 일단 고기 자체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 쌈장이나 소금 같은 외부적 요인을 일체 배제하고 순수한 한 점을 입에 투여한 후 수십 년째 단련한 규칙적 저작운동에 돌입한다. 누린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고 고소하다. 냉동이 아닌 냉장고기라서 푸석푸석하지 않고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희한하게도 극미량의 소금으로 간을 한 것 같은 은은한 짠맛이 기분 좋게 배어 있다. 따로 기름장이 필요 없을 정도다. 침샘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어느새 입안은 범람 직전의 하천과도 같은 상태다.

시원하게 준비해 놓은 영혼의 동반자는 코노 수르 비씨클레타 언오크트 샤르도네 2020이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약 1만 5천 원에 구매했다. 할인하면 9천 원대에 판매하기도 하는 저렴한 와인이다. 유리병과 라벨에 새겨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는데, 포도를 보호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포도밭을 누비는 코노 수르 직원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코노 수르 비씨클레타 언오크트 샤르도네 2020 ⓒ 임승수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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