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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무인정 기밀유출' 사건…기밀 맞나? 숨은 의도 없나?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입력 : 2024.09.02 09:26|수정 : 2024.09.02 09:26


방첩사령부가 해군 무인수상정 기밀유출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LIG넥스원이 해군사관학교에 무인수상정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해사가 LIG넥스원에 제출한 연구용역 결과에 무인수상정 기밀이 포함됐다는 것이 방첩사 수사의 요지입니다.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간 경쟁이 치열한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 설계 사업의 제안서 평가가 한창인 시점에 사건이 불거져 세간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건과 사업을 둘러싼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근거를 확인할 길 없는 소문도 더러 들리지만 정확한 지적들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해사가 LIG넥스원의 용역을 수행한 2018년에는 해군에 무인수상정 기밀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방산업계의 고질적인 '뒷덜미 잡기' 풍토입니다.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법이 없는 대한민국 방산의 고질병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산업계가 방첩사 수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2018년에 유출할 기밀 있었나?

LIG넥스원의 무인수상정 '해검' (김태훈 취파)
▲ LIG넥스원의 무인수상정 '해검'

SBS가 해군의 여러 부서를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해군의 무인수상정 관련 기밀들은 작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해군본부 전력 부서에서 작성했습니다. 원래 무기체계 관련 기밀은 각군 본부의 기획참모부 등 전력 부서에서 작성해 관리합니다. 그래서 무기체계 기밀유출 사건은 절대 다수가 전력 부서를 중심으로 터집니다.

무인수상정 기밀유출 사건은 해군본부 전력 부서가 아니라, 해사에서 터졌습니다. 해사는 무인수상정 기밀을 생성하거나 보유할 권한도, 이유도 없습니다. 해사는 단지 2018년 LIG넥스원의 용역을 받아 무인수상정 연구를 했고, 그 결과를 LIG넥스원에 넘겼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산학협력입니다. 해군 관계자는 "각종 학술대회와 인터넷 자료, 해외의 무인수상정 운용 동향 등을 참고해 연구용역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습니다.

화근은 제목에 숨어있습니다. 방첩사와 해사에 따르면 연구용역 보고서의 제목은 <임무 기반 무인수상정 운용요구서(ORD) 작성 및 내항성·RCS·선형설계 분석 연구>입니다. 제목 중 '운용요구서(ORD·Operational Requirement Document)'가 사달을 일으켰습니다. 각군 본부의 전력 부서에서 작성하는 ORD는 군 소요의 내밀한 부분이 포함된 기밀입니다. 이런 ORD가 해사의 용역 보고서 제목에 달린 것입니다.

2018년의 해군에는 무인수상정 ORD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해사의 용역연구팀은 "보고서에 무인수상정 진짜 ORD의 내용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ORD의 일반적인 절차 등이 서술돼 보고서 제목에 ORD를 넣었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해사는 제목 중 ORD에 주목해 3급 비밀로 분류했습니다.

해군 관계자는 "내용은 평문인데 제목에서 비문 냄새가 나니까 해사가 비문으로 등록한 일종의 해프닝이다", "비밀 과제의 경우 학교 측에 신고한 뒤 비문을 생산 및 등재해 원본을 발주처에 제출하도록 하는 지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보고서의 내용은 기밀이 아니지만 제목에 기밀 같은 단어가 들어갔고, 그래서 학교 지침에 따라 신고하고 비문 처리해 발주처에 납품한 것입니다.
 

사업의 문제지·답안지 유출?

방사청의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 설계 사업에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이 참가했습니다. 제안서 평가 막바지 단계에서 LIG넥스원-해사의 무인수상정 기밀유출 사건이 보도됐습니다. 보도는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 설계 사업의 문제지와 답안지가 LIG넥스원 손에 넘어갔다"고 사건의 의미를 짚었습니다. 방첩사 측도 기자에게 똑같은 취지의 설명을 했습니다.

2018년 해사 연구용역팀이 학술대회와 인터넷 자료, 해외 동향 등을 추려 작성한 <임무 기반 무인수상정 운용요구서(ORD) 작성 및 내항성·RCS·선형설계 분석 연구>가 6년 뒤 해군본부 전력 부서의 소요를 받아 방사청이 발주한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 설계 사업의 문제지와 답안지가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방사청 발주 사업은 작년 해군본부가 작성한 별도의 무인수상정 기밀을 근거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해군 무인수상정 ORD도 작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년 전의 해사가 1년 전 해군 전력 부서에서 작성된 무인수상정 ORD를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2018년 해사 보고서 중 무인수상정 ORD 서술과 2023년 해군본부의 무인수상정 ORD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합참의 전력 담당 장교는 "무인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무인수상정의 5~6년 전 정보는 현재 시점에서 거의 쓸모없다"고 말했습니다.

방산 흑역사 떠올리는 이유는?

한화시스템의 무인수상정 '해령' (김태훈 취파)
▲ 한화시스템의 무인수상정 '해령'

해사가 LIG넥스원에 제출한 용역 보고서 겉표지에 3급 비밀이 찍힌 것은 사실입니다. 해사와 해군에서는 "3급 비문 처리 후 발주처 원본 제출은 정상적 행위"라는 공통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첩사는 보고서 겉표지에 찍힌 3급 비밀 도장을 넘어, 보고서의 내용과 비문 처리 절차를 엄밀히 따져 의법 처리하면 됩니다. 송치 여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특정 사업의 문제지와 답안지가 유출됐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면 괜한 의심만 초래합니다.

LIG넥스원의 경쟁업체가 방첩사의 수사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피수사 대상자의 개인정보와 구체 혐의 등이 비상식적인 속도로 한화시스템에 넘어갔다는 진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화시스템 측이 이번 사건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모처에 유포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장은 지난달 말 "'상대업체(LIG넥스원)가 문제지와 답안지를 들고 있어서 우리는 떨어졌다'는 논리를 만들어 주주와 투자자를 달래려는 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우려했는데 실제로 한화시스템은 사업에서 떨어졌습니다.

불공정과 뒷덜미 잡기 시비는 대한민국 방산 역사의 악성 단골입니다. 먼저 KF-21 에이사 레이더 개발과 425 정찰위성 개발 사업입니다. 여러 의혹과 잡음을 낳은 끝에 기술 우위의 A사가 후발주자인 B사에게 사업권을 빼앗겼습니다. 장거리레이더 개발 사업에서는 B사가 제안서를 제출하는 것처럼 방사청에 박스들을 밀어넣자 A사가 다급하게 제안서의 가격을 높였는데 B사가 들이민 것은 빈 박스로 드러나 빈축을 샀습니다. 방사청의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 설계 사업 중에 벌어진 무인수상정 기밀유출 사건을 보며 이런 흑역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업체도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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