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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티가 탄생한 곳' 가봤더니 젊은 세대 빨아들이는 이유가 있었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8.12 09:00|수정 : 2024.08.12 09:00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타이완 타이중 편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모종혁 중국본색 썸네일타이중 술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상품을 모아놓은 상징물
2024년 1월 대만에서 제16대 총통 선거와 제11대 입법위원 선거가 열렸다. 나는 이를 취재하기 위해서 19일 동안 타이베이(臺北)에서 컨딩(墾丁)까지 대만을 종단하며 민심을 탐방했다.

주요 도시를 모두 방문했는데, 타이중(臺中)에 주목했다. 그 이유는 타이중이 대만에서 정치적으로 손꼽히는 '스윙보터' 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이중은 직선제 시행 이래 역대 시장을 민주진보당과 중국국민당이 번갈아 가지면서 각각 2명씩 배출했다. 입법위원은 전체 선거에 승리한 정당에게 민심이 쏠리는 결과가 반복되었다.

일본 통치 시기에 건설됐던 타이중기차역. 바로 옆에 신역사가 있다.
타이중에는 입법위원의 전체 지역구 73석 의석 중 8석이 배정되었다. 국민당이 압승한 2012년 8대에서는 국민당이 6석, 민진당 1석, 군소 정당이 1석을 차지했다.

민진당이 압승한 2016년 9대에서 민진당이 4석, 국민당이 3석, 군소 정당이 1석을 차지했다. 승리했으나 전체 의석이 줄어든 2020년 10대에서 민진당은 타이중에서 오히려 5석으로 증가했고, 국민당은 2석, 군소 정당은 1석을 차지했다.

2024년 선거는 국민당이 제1당, 민진당이 제2당이 됐는데, 타이중에서 국민당이 6석, 민진당이 2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옛 타이중기차역의 일부 플랫폼과 철로를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선거 양상은 타이중에 젊은 층이 꾸준히 유입되어 왔기 때문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2010년 264만 명, 2015년 274만 명, 2020년 282만 명, 2023년 284만 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사실 대만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저출산 등 한국과 똑같은 사회 문제를 앓고 있다. 2023년 대만 인구는 2,342만 명인데, 이 중 40%가 수도인 타이베이와 주변의 신베이(新北), 타오위안(桃園) 등 3대 직할시에 몰려있다.

통계로 보면, 1990년 35.3%, 2000년 36.6%, 2010년 38.5%, 2020년 39.4%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타이중의 수많은 공원에서 대표 격인 타이중공원
그에 반해 가오슝(高雄)과 타이난(臺南)은 2015년에 정점을 찍은 뒤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과거 가오슝은 인구가 현재 403만 명인 신베이 다음이었고, 대만 최대의 항구도시다.

가오슝항의 물동량은 중국이 부상하기 이전에는 아시아 3위권을 유지했다. 한국으로 치면, 부산과 같은 지위와 역할이다.

타이난은 가오슝과 함께 푸젠에서 건너온 주민들의 후예가 절대다수다. 따라서 두 도시는 줄곧 민진당의 텃밭으로 군림했다. 그런데 현재 인구는 가오슝이 274만 명으로 타이중에 뒤처졌고, 타이난은 186만 명이다.

타이중 시내에는 이런 크고 작은 개천이 많다.
2022년 대만의 출산율은 0.87명이고, 평균 초혼의 나이는 남성 32.6세, 여성 30.7세로 한국과 비슷하다. 서울처럼 타이베이의 출산율이 더 낮고 초혼 나이가 더 높은 상황도 똑같다.

이런 현실 아래 가오슝과 타이난에서 유출된 인구는 수도권과 타이중으로 이동하고 있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IT 산업의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IT 산업은 대만의 경제를 주도하고 국제 경쟁력을 가졌다.

그에 반해 가오슝과 타이난은 여전히 전통산업만 품고 있다. 따라서 16대 총통 선거에서 커원저(柯文哲)가 타이중에서 크게 선전했다.

옛 안과를 전통 디저트와 아이스크림 가게로 리모델링한 궁위안안과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아 30%의 득표율로 전국 평균 득표율인 26.4%보다 더 높았다. 그밖에 타오위안, 신주(新竹) 등 공업단지가 많은 도시에서 평균 이상을 득표했다.

입법위원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 민진당이 타이중에서 의석을 늘렸던 이유는 2019년 홍콩 시위 사태로 대만 젊은 층의 반중(反中) 감정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4년에는 청년층의 지지가 커원저로 쏠리면서, 지역구에서 국민당이 약진한 결과를 낳았다. 물론 국민당이 커원저의 민중당과 지역구 후보를 단일화했던 원인도 있다.

타이중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먹는 궁위안안과의 아이스크림
나는 타이중에서 3박을 하면서 타이중이 젊은 세대를 흡입하는 다른 비결이 무엇인가 살펴봤다. 이를 위해서 거리, 공원, 상점 등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인터뷰도 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매력 포인트를 찾아냈다.

첫째,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다. 대만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거의 없고 건설한 지 20~30년이 지난 구축 건물이 즐비하다.

그러나 타이베이의 대다수 주택은 ㎥당 50~60만 대만달러(약 2,128~2,552만 원)를 호가한다. 청년층의 낮은 임금을 고려한다면,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가격이다.

대만 버블티의 원조 가게임을 자랑하는 춘수이탕
그런데 타이중의 평균 주택 가격은 타이베이보다 30% 안팎이 저렴하다. 월세도 15~25%가 싸다. 젊은 부부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선호하는 조건이다.

둘째, 공원과 하천이 많아 거주 환경이 쾌적하다. 타이중에는 공원이 780개를 넘는다. 대표격인 타이중공원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공원이 도시 곳곳에 널려있다.

또한 도시를 대만 6대 강인 우시(烏溪), 5대 강인 다자시(大甲溪), 7대 강인 다안시(大安溪)가 층층으로 에워싸고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도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개천이 흐른다.

춘수이탕은 버블티뿐만 아니라 음식을 파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셋째, 도심과 주거지에서 공업단지가 가깝다. 타이중이 대만 2대 도시에 올라섰지만, 경전철 1개 노선만 있다. 이는 지하철 2개 노선과 경전철 1개 노선을 보유한 가오슝에 뒤처진다.

하지만 해안가에 있는 타이중의 공업단지는 어디서든 버스로 30분에서 1시간 사이 거리다. 1시간 이상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타이베이로 출퇴근해야 하는 신베이 시민들과 비교하면 아주 행복하다.

사실 타이중의 도시 개발 역사는 가오슝, 타이난에 비해 훨씬 짧다. 1894년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하여 대만을 할양받아 통치하면서부터다.

타이중 술공장에 세워진 두강(杜康), 이백, 종규(鍾馗)의 석상 (왼쪽부터)
그렇기에 타이중에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수백 년 된 역사유적이나 건축물이 전혀 없다. 그나마 일본 통치 시기에 건설된 것이 오래되었다.

1917년에 완공된 옛 타이중기차역, 1927년에 문을 연 궁위안안과(宮原眼科), 1934년에 완공된 옛 타이중시청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궁위안안과는 일본인 의사인 미야하라가 세웠는데, 일제 패망 후 대만인에게 넘겨졌다.

그러다가 2010년 일부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코너로, 일부는 전통 디저트를 파는 코너로 리모델링하여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타이중의 명소가 되었다.

타이중 술공장에서 생산하는 위스키 원액을 숙성시키는 오크통
궁위안안과에서 멀지 않은 춘추이탕(春水堂)도 명소다. 1987년 여기서 대만 밀크티인 버블티(珍珠奶茶)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버블티는 카사바로 만든 타피오카 펄에 여러 재료의 음료를 넣어 만든다. 음료를 빨면서 타피오카 펄을 음미하는 맛이 특색 있다.

해안가의 공업단지에 세워진 타이중 술공장은 또 다른 일본 통치 시기의 유산이다.

타이중 술공장은 1916년 일본이 준마이슈(純米酒)와 세이슈(清酒)를 양조하기 위해서 설립했다. 주목할 점은 일제의 패망 이후에도 대만에서는 드물게 준마이슈를 계속 생산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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