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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폭행·기밀 노출 논란…국군정보사령부 수뇌부의 난장판 다툼

유영규 기자

입력 : 2024.08.07 11:01|수정 : 2024.08.07 11:01


대북 인적 정보(휴민트)의 총본산이자 군의 정보를 총괄하는 국군정보사령부가 내부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무너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고 있습니다.

오늘(7일) 군에 따르면 정보사령부 소속 여단장 A 준장과 사령관 B 소장 사이의 충돌이 법정 다툼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감춰뒀어야 할 사안들이 드러났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발단은 지난 5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보사에서 휴민트를 총괄하는 A 준장이 서울 시내 영외 사무실인 한 오피스텔을 민간단체에 사용하게끔 하고, 이 사실을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사령관은 A 준장이 자신의 승인 없이 해당 단체가 오피스텔을 쓰도록 지원해 줬다며 직권남용 및 배임에 해당하니 지원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A 준장은 내용을 보강해 추후 다시 보고하겠다고 해, 6월 7일 재차 보고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사달이 났습니다.

A 준장 측은 이때 보고 도중 사령관이 A 준장 쪽으로 결재판을 던졌다고 합니다.

물건 투척은 사람에게 맞지 않더라도 폭행에 해당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A 준장은 지난달 17일 사령관을 폭행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고소했습니다.

사령관이 부하를 시켜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몰래 감시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도 추가했습니다.

사령관 측은 반대로 A 준장이 사령관에게 폭언해 모욕함으로써 상관모욕 혐의가 있다면서 그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대에서 부대 최고 지휘관인 사령관까지 엮여 장성들끼리 폭행과 폭언, 모욕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A 준장은 사령관보다 육군사관학교 세 기수 선배로 정보사령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지만 사령관은 정보 업무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자존심과 자격지심을 살살 건드리다가 폭발한 것일 수 있습니다.

A 준장이 낸 고소장에 담긴 문제의 결재판이 날아간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준장은 6월 7일 보고 현장에서 보고가 진행되기도 전에 사령관이 "무조건 (방을) 빼라"는 식으로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A 준장이 "못 뺍니다. 지금 어떻게 뺍니까. 기획사업 자체가 불가합니다"라며 "이런 식으로 비전문가인 사령관이 개입하니까 공작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령관이 결재판을 던지면서 "보고를 안 받겠다. 나가라"라고 말했습니다.

A 준장은 "누가 요새 이런 식으로 결재판을 던집니까. 소령, 중령한테도 요새 결재판 던지는 사람이 없는데 저도 장군입니다"라고 항변하고 사무실을 나갔습니다.

A 준장이 사무실을 곱게 나간 게 아니라 상대가 불쾌할 정도로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표면상 연차가 높고 업무 전문가인 A 준장이 상급자인 사령관을 무시한 모양새입니다.

사령관 지시를 따르지 않고 "비전문가" 운운한 언행은 일반적 관점에서 하극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 준장 측은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6월 7일 말다툼에서 A 준장이 거론한 "기획사업"이 그 근거입니다.

A 준장의 고소장에는 민간단체가 오피스텔을 쓰게 된 경위가 적혔습니다.

해당 민간단체는 정보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을 지낸 모 예비역 장군이 이사장으로 있는 연구소입니다.

이 예비역 장군은 육사 동기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습니다.

정보활동에서 예비역이나 민간인을 협조자로 활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활동을 더욱 은밀하게 할 수 있고, 유사시 정부와 관련성을 부인할 수도 있어서입니다.

실제 A 준장은 이 오피스텔을 공작업무 지원용으로 운용하고 있고, 공작 활동 기반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A 준장은 고소장에서 "휴민트 책임 지휘관인 제 입장에서는 (사무실 지원을 중단하라는 사령관의 지시가)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로 인식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자신의 법적 변호를 위해 이런 견해를 담은 것인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소장에서 '기획사업'을 거론하고 오피스텔에 대해 '너무 자세히' 설명해 버린 것입니다.

A 준장 측은 "해당 연구소가 기획공작인 '광개토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령관을 설득하고자 노력했다"며 "다음 보고 시 광개토 기획사업을 문서로 구체화하고 해당 영외 사무실에 여단 공작팀을 상주시키는 방향으로 사무실 지원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보강하는 쪽으로 보고하겠다고 했다"고 썼습니다.

광개토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고소장에 나오지는 않지만, 한반도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던 광개토대왕 업적과 정보사 업무 성격에 비춰 중국 동북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대북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군 안팎의 유력한 관측입니다.

결재판을 던지고 비방하는 말을 주고받는 갈등이 법적 다툼으로 번진 와중에 외부로 노출돼서는 안 되는 공작 암호명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셈입니다.

광개토 사업이라는 이 공작은 A 준장이 사령관을 건너뛰고 국방부 상부에 직보 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사령관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경위가 어떻게 됐든 공작 암호명이 이런 고소전으로 인해 노출되고 관련 단체나 인원이 거론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정보사령부의 망신살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보사령부에서 일하던 20여 년 경력의 부사관 출신 5급 군무원이 해외 파견 요원들의 신상 정보를 중국인에게 유출한 사건이 지난달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유출된 정보에는 정부 기관과 무관한 것으로 신분을 위장하는 이른바 '블랙 요원' 정보도 포함돼 대북 정보망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보사는 정보 유출을 자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6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통보받아 알게 됐다고 합니다.

해당 군무원에 대해서는 사건을 수사한 국군방첩사령부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뿐 아니라 간첩죄 혐의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첩죄는 여타 국가가 아닌 북한으로 기밀을 유출한 자에게만 적용되는 죄목입니다.

만약 간첩죄가 적용된다면 북한과의 연계가 포착됐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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