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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면 여성 경기에 출전하면 안 될까? [스프]

안혜민 기자

입력 : 2024.08.08 09:01|수정 : 2024.08.08 09:01

[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올림픽과 성1


안혜민 마부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8월 7일이 절기상 입추더라고요.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이지만 여전히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을의 문을 지난 만큼 앞으로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겠죠? 거기에다 파리에서 전해오는 국가대표팀의 소식 덕분에 더운 열기를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팀 선수들 모두 끝까지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하길 바랄게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지난 편지에 이어 올림픽 특집 2탄을 준비했습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도 관련 기사를 봤을 것 같은데요, 여자 복싱 경기 중에 성별 논란이 있었잖아요? 관련 기사들도 쏟아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더라고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SNS에 "나는 남성을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 이탈리아 총리도 강한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오늘 마부뉴스에선 이번 성별 논란이 있었던 복싱과 스포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정확한 사실 관계를 정리해 보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스포츠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데이터로 풀어봤습니다. 1편에서는 파리올림픽 복싱 논란 상황을 먼저 정리해 봤습니다.
 

파리올림픽 복싱 논란, 상황은 이렇다

 
WHEN 파리올림픽 여자복싱 66kg급 16강 1라운드 경기
WHO 이탈리아 안젤라 카리니 선수 vs 알제리 이마네 칼리프 선수
WHAT 이마네 칼리프가 안젤라 카리니를 46초 만에 기권시키고 승리

파리올림픽에서 벌어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자복싱 66kg 16강에서 이마네 칼리프가 안젤라 카리니를 상대로 46초 만에 승리했다는 거죠. 그런데 딱 보더라도 두 선수 사이에 체격 차이가 심하게 나고, 과거 이마네 칼리프가 성별 논란으로 실격된 적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자 논란이 되기 시작했어요. 이마네 칼리프를 두고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라는 얘기도 나왔고, 남성이 여성 종목에 출전해도 되냐는 형평성 논란까지 이어졌죠.

일단 정확히 밝혀진 사실부터 확인해 볼게요. 먼저 이마네 칼리프가 작년 여성권투챔피언십 대회에서 성별 논란으로 실격 처리된 건 맞습니다. 대회를 주관한 국제복싱협회(IBA)에선 이마네 칼리프와 타이완의 린 유팅, 두 선수를 의학적 기준을 근거로 실격 처리했죠. 당시 그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두 선수 모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되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이후 IBA 회장은 러시아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두 선수들이 XY염색체를 갖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죠.

안혜민 마부뉴스
그런데 이슈가 커지면서 최근 IBA가 밝힌 정보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 중에 사실 아닌 게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IBA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두 선수가 왜 실격 처리되었는지 설명했는데요, 거기엔 "두 선수들은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받지 않았고, 별도의 공인 검사를 받았다"고만 적혀 있었거든요. 지난 8월 5일 IBA에선 뒤늦은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두 선수가 받은 테스트는 혈액 테스트였다고 밝혔죠. 하지만 그 세부 사항은 비밀이라며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BBC에선 추가 취재를 통해 두 선수 모두 XY 염색체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이마네 칼리프가 지난해 성별 논란이 있었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였습니다. 또한 이마네 칼리프 스스로가 자신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라거나,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 간성이라고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마네 칼리프는 8강전 승리 이후 "나는 여성이고, 여성으로 남을 것"이라고 울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IOC는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운동할 권리가 있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Q. IBA 뒤에 러시아가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

일단 지난해 이마네 칼리프가 실격하게 된 건, 규정과 시스템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니라 IBA 사무총장과 최고경영자의 단독 결정으로 이뤄졌습니다. 선조치 이후에 이사회가 절차를 수립해 규정에 반영했고요. 게다가 결승전 직전에 실격 처리한 타이밍도 오묘합니다. 이마네 칼리프는 준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잘리아 아미녜바와 만나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러시아 선수가 무패 기록을 갖고 있던 촉망받는 유망주였죠. 아미녜바와의 경기 3일 뒤 칼리프는 실격 처리되었고, 아미녜바는 무패 기록을 회복했습니다.

IBA와 러시아와의 커넥션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복싱 경기에서 오심 논란이 크게 있었는데, 이때 오심의 이득을 본 선수들이 공교롭게도 거의 다 러시아 선수들이었거든요. IOC는 올림픽에서 복싱을 주관하는 IBA를 향해 개혁을 요구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결국 IOC는 IBA의 올림픽 주관 국제연맹 자격을 정지시켜 버렸죠. 그래서 도쿄올림픽과 파리올림픽의 복싱 경기는 IBA가 아닌 자체 TF가 운영을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상황은 좋지 않아요. 현재 IBA의 회장은 푸틴의 측근인 우마르 크렘례프거든요. 크렘례프는 IBA 회장 당선 이후 조직 운영을 스위스 로잔에서 아예 러시아로 이전해 버렸어요.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대회 출전이 막힌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금지 조치도 다 허용해 주었죠. 이런 탓에 이마네 칼리프의 실격 뒤에는 정치적인 영향도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성인데 여성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던 선수들

사실 이번 파리올림픽 복싱 경기에서 불거진 성별 논란은 앞선 올림픽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두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한 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인 캐스터 세메냐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인도의 육상 선수 두티 찬드입니다. 두 선수 모두 여성으로 태어나 자랐고, 여성 종목에 출전하였지만 성별 논란에 휩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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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캐스터 세메냐입니다. 세메냐는 2009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여자 8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며 그야말로 화려한 데뷔를 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참여한 각국 대표선수들은 세메냐의 체격과 외모를 두고 남자 아니냐며 이의 제기를 했죠. 세계선수권 조직위는 이들의 이의 제기를 수용해 세메냐에 대해 심층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론은 세메냐의 성별은 '여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획득한 메달도 인정되었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주최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캐스터 세메냐 논란 이후 성별 테스트를 강화했습니다. 기존엔 성염색체를 통해 성별 테스트를 해왔는데, 논란 이후부터는 테스토스테론의 농도를 기준으로 바꿨어요. 그 기준치는 리터당 10nmol(나노 몰)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준이 바뀌자 인도의 육상 선수 두티 찬드가 피해를 봤습니다. 2014년 IAAF는 찬드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다며 여성대회 참가를 무기한 금지해 버렸거든요. 찬드의 몸에서 측정된 호르몬의 양은 여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거죠. 협회는 만약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면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든 수술을 하든지 해서 호르몬 수치를 낮추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여자로 길러졌다"

두티 찬드의 입장은 단호했어요. 그리곤 이 건을 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 가져갔습니다. 현재 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테스토스테론 규제를 CAS가 판단해 달라는 거였죠. CAS에서는 협회가 테스토스테론과 농도와 경기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협회는 시간 내에 제대로 입증해 내질 못했고, 결국 CAS는 두티 찬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호르몬 규제'를 두고 나뉘는 입장

현재 '호르몬 규제'를 두고 상황은 두 가지로 입장이 갈리고 있습니다. 먼저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의 남성, 여성 구분은 호르몬을 통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이 있고요. 다른 쪽에는 "아니다. 호르몬 규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먼저 호르몬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IAAF는 두티 찬드와의 소송 전에서 패소한 이후인 2017년 세계반도핑기구와 함께 테스토스테론이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논문에는 가령 해머 던지기에서는 4.53%, 장대높이뛰기에선 2.94% 등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경기력이 더 좋아진다는 결과가 담겨 있었죠. 이 논문을 바탕으로 IAAF는 2019년 새로운 호르몬 규정을 발표하는데요, 이전보다 더 빡빡하게 농도 제한선은 5nmol/L, 즉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호르몬 규정은 바로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었어요. 캐스터 세메냐는 이 기준치에 따르면 출전이 불가능했거든요. 세메냐는 바로 IAAF를 CAS에 제소했습니다. 논문에서 가장 효과가 많다고 나온 해머 던지기나 장대높이뛰기는 호르몬 규제에서 빠지고, 세메냐의 주력 육상 경기에만 호르몬 규제를 넣는 건 누가 봐도 세메냐를 노리고 만든 규제라는 입장도 담겼죠. 하지만 지난 두티 찬드의 소송과는 다르게 이번엔 IAAF가 승리했습니다. 세메냐는 이에 불복하고 스위스 연방 법원에 항소했지만, 2020년 스위스 연방 법원도 IAAF의 손을 들어주면서 최종적으로 호르몬 규제는 확정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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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IOC는 호르몬 규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 연방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IOC에서는 250명이 넘는 운동선수들과 관계자들을 모아 60회 이상의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오랜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만으로 경기력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거였죠. 먼저 IAAF가 2017년에 발표한 논문에 오류가 너무 많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해당 논문에 대해 동료 과학자들이 신뢰할 수 없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IOC는 검증되지 않은 논문을 바탕으로 규제를 만들 수 없었던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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