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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맛' 담아내는 파인다이닝의 위기,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8.06 09:00|수정 : 2024.08.06 09:00

[뉴욕타임스 칼럼] Fine Dining Can’t Go On Like This, by Aaron Timms


0806 뉴욕타임스 번역
 
* 애런 팀스는 문화 비평가로 현대 식문화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그는 호주 시드니에서 자랐다.
 

식품 수급에 관한 대담한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시리즈 '불타는 행성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일환으로 작성된 칼럼입니다. 이 시리즈가 궁금하다면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후변화 에디터인 일라이자 바클리의 소개 글을 읽어보세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들의 메뉴판을 훑어보다 보면, 자연의 맛을 담은 파스타와 가든 샐러드, 난해한 단백질 요리와 라브네 치즈, 살사 마차스 사이에서 어김없이 발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재배에 엄청난 물이 소비되는 작물들이다.

미국인들이 기후변화의 급박한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했지만, 지난 몇십 년간 인기를 끈 계절 재료 위주의 요리에는 여전히 물을 많이 먹는 농산물이 정말 많이 쓰인다. 아몬드와 피스타치오, 아티초크, 무화과, 체리, 사과, 감자는 칭송이 자자한 앨리스 워터스의 레스토랑 '셰 파니스(Chez Panisse)'부터 토머스 켈러의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 할리우드 대로의 인기 식당 '키스멧(Kismet)', 맨해튼의 명소 '르 버나딘(Le Bernadin)'에 이르기까지, 미식의 첨단에 있는 유명 셰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재료다.

그러나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을 농산물 재배에 쓰는 캘리포니아주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캘리포니아는 현재 몇 년쯤 눈, 비가 조금 더 내리는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을 심각한 물 부족 상태에 놓여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물을 과도하게 끌어 올려 쓴 탓에 대수층이 고갈되어 땅이 가라앉고 있다. 유명 식당에 필요한 농산물을 농부들이 더 이상 공급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외식 업계도 만성적인 가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을 덜 쓰는 식생활로의 전환이 곧 미식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양이 풍부하고 에너지 넘치는 요리 문화를 만들어낼 음식이 무엇인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구상해야 한다. 유서 깊은 농업과 외식업 역사를 보유한 캘리포니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캘리포니아만의 과제는 아니다. 극심한 가뭄을 겪으며 비슷한 생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호주는 이미 가뭄에 잘 견디는 음식을 중심으로 화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의 식문화는 '풍요의 땅'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의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 지난 50년간 워터스, 켈러, 울프강 퍽, 도미니크 크렌, 낸시 실버튼 등 새로운 세대 셰프들이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해 왔다. 유통 과정을 줄이고, 직접 기른 농산물을 적극 활용하는 '농장에서 바로 식탁까지(farm-to-table)' 운동, 지역 생산 농산물 사용 장려, 유기농 식품으로의 전환 등 식문화의 큰 부분이 모두 어느 정도 캘리포니아 출신 셰프들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들이 따르는 (중동식 핫소스 저그부터 패스트라미가 들어간 아침 식사용 부리토에 이르는) '문화적 잡식성' 요리법은 캘리포니아의 풍요로운 자연과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났다.

캘리포니아 농업 분야는 이러한 풍요를 만끽하는 식문화를 노골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은 캘리포니아 사람만 먹여 살리지 않고, 미국 전체, 나아가 세계인에게 상당히 많은 식품을 제공한다. 캘리포니아는 아몬드, 아티초크, 당근, 마늘, 양파, 양상추, 포도, 피스타치오,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의 미국 최대 산지다. 캘리포니아 농민들이 2022년에 올린 수익은 559억 달러(우리 돈 약 76조 원)에 달한다.

농업은 캘리포니아 내 기업과 가정용수 소비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물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다. 상당량이 가축 먹이용인 알팔파 재배에 쓰이기는 하지만, 과일과 채소, 견과류 생산에도 많은 물이 쓰인다. 관개된 농지 1에이커당 4피트 깊이의 물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아몬드나 피스타치오가 물을 많이 먹는 주범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몬드, 피스타치오뿐 아니라 살구, 배, 자두, 호두도 평균 3피트 이상의 물이 드는 작물이다.

지하수 사용을 규제하는 정책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셰프들에겐 소비 행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독특한 문화 권력이 있으므로, 물을 덜 먹는 작물 재배를 장려할 수 있다. 외식 업계는 2차대전 이후 대중의 취향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인 키위와 케일, 무, 적색 치커리 등은 한때 매우 이국적인 식재료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셰프들 덕분에 대중이 더욱 모험적인 장바구니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농가는 늘 그랬듯 시장에 반응하지만, 수요는 유행을 따르는 법이다. 셰프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가뭄을 잘 견디는 작물을 활용한 요리법은 퀴노아나 호박, 아루굴라처럼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재료들을 많이 활용한다. 시금치 대용으로 먹을 만한 아마란스의 일종인 붉은 오라크, 줄기콩의 일종인 방울뱀 콩과 자색 제비콩, 남서부 사막에서 자라는 테파리콩, 메스키트 나무에서 추출한 메스키트 가루, 단백질이 풍부한 나무콩처럼 덜 알려진 재료도 있다. 가뭄에 강한 작물을 요리에 활용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는 앞으로 물을 너무 많이 쓰는 작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식습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꿔가야 한다. 가뭄을 잘 견디는 농산물을 똑똑하게 요리에 활용하는 것이 그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원주민 출신 셰프들이 이미 가뭄에 강한 토속 레시피를 바탕으로 인상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오클랜드에서 식당 와페파스 키친(Wahpepah's Kitchen)을 운영하는 셰프 크리스탈 와페파는 산벚나무 열매로 만든 소스를 바른 반건조 소시지, 녹색 호박씨와 테파리콩을 갈아 만든 소스, 따뜻한 베리 소스와 메이플 크림을 얹은 도토리 크레페 같은 요리를 내놓고 있다. 버클리에서 이스트 베이 지역 원주민 올로네 부족의 전통 요리를 계승한 카페 올로네(Cafe Ohlone)에서는 월계수 토끼고기 소스, 도토리 수프, 허클베리와 검은 호두를 넣은 치아 죽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재료는 야생에서 얻지만, 테파리콩, 산벚나무 열매, 검은 호두 등 여러 재료의 상업적 생산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원주민 개척자를 제외하면 캘리포니아 요식업계는 아직 가뭄에 잘 견디는 식품이 제공하는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농업 분야가 크게 발달한 선진국이면서 건조하고 더운 기후를 공유하고, 기후변화의 영향도 크게 받는 호주와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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