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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민간신앙의 도시에서 타이완의 '국민 맥주'를 만나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8.05 09:01|수정 : 2024.08.05 09:01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타이완 타이난 편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모종혁 중국본색네덜란드인들이 타이난(臺南)에 세웠던 행정센터인 츠칸러우(赤嵌樓)
아시아에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 나라로 어디를 떠올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종교의 천국인 인도를 손꼽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 못지않게 다양한 종교가 번성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만이다. 2021년 대만 행정원이 발간한 《2020년 대만 각 종교의 교무개황》에 따르면, 전 국민의 80% 가까이가 각종 종교를 믿고 있다. 또한 22개 종교가 일정한 교단과 종교시설, 성직자, 교인 등을 갖고 있다.

사실 금세기 들어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앙자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성공의 동녕국 때 세워졌던 타이난 공자묘의 대성전
특히 한국, 일본 등 신앙의 자유가 철저히 지켜지는 나라에서 이런 사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만은 다르다.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부터 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동방정교회, 대만에서 발원하거나 대만에서만 성장한 신흥 종교, 전 세계 곳곳에서 발원한 신흥 종교 등이 흥성하고 있다.

그중 대만인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도교다. 종교를 가진 인구 중 63.8%가 도교를 믿는다. 그다음이 불교로 15.2%다. 사원도 많아서 2020년 말까지 도교는 9,684개, 불교는 2,317개에 달했다.

기독교 장로회의 한 교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 활동
최근 10년 동안 개신교가 교세를 크게 확장해 15.2%를 차지했고, 교회는 2,292개에 달했다. 이단으로 판정받은 다수의 개신교 교단이 대만에 진출했는데, 한국에서 건너간 교단이 가장 많다.

가톨릭은 3.6%를 차지했고 성당은 553개에 달했다. 소수 종교로는 유불선을 융합한 일관도(一貫道), 일본에서 유입된 천리교(天理敎), 한국에서 유입된 미륵대도(彌勒大道)가 있다.

사원 수가 일관도는 225개, 천리교는 18개, 미륵대도는 6개에 달한다. 그리고 이슬람교 사원이 4개, 유태교와 동방정교회 교회가 각각 1개 있다.

타이베이(臺北) 맹갑용산사에 모셔진 화타선사에게 제를 올리는 여성
주목할 점은 가장 교세가 큰 도교가 온갖 민간신앙을 품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민간신앙과 관련된 공식 종교시설이 1,000여 개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도교 신자의 절반 이상을 민간신앙 신자로 추정한다. 도교가 중국 각지의 토속신앙과 접목하면서 수많은 민간신앙을 파생시켰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민간신앙이 번성한 배경에는 한족의 이민사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대만에는 폴리네시아계의 남방 민족이 선점해서 살았다. 하지만 1661년 명나라 장군 정성공이 군대를 몰고 대만으로 건너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타이난의 대천후궁에 모셔져 있는 마조(媽祖)상
정성공이 세운 정 씨 왕국은 반청복명(反清復明)을 앞세워, 한족의 대만 이주를 촉진했다. 특히 대만과 가까운 푸젠(福建)성의 해안가 주민과 산속 객가가 건너갔다.

이런 상황은 1683년 청군이 대만을 점령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부터 마조(媽祖), 현천상제(玄天上帝), 수선존왕(水仙尊王) 등 다양한 해신을 믿는 민간신앙이 대만에 뿌리를 내렸다.

푸젠 연안의 주민이 믿는 전통신앙인 데다, 섬인 대만에서는 어업 활동을 했기에 해신에게 무사안녕을 빌었다. 그중 마조는 안전한 항해를 지켜주는 신이다.

타이난의 사전무묘에 모셔져 신앙의 대상이 된 중국 역사의 위인들
원래는 푸젠성 푸톈(莆田) 해안가의 주민들이 숭배했다. 그렇기에 바다로 둘러싸인 대만에서 마조 신앙이 더욱 번성했다.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백만 명이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고향과 출신 성분, 직업군이 아주 다양했다. 중국 전역에서 왔기에 성장 환경, 문화 배경, 종교 성향 등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뿌리에 집착했다. 따라서 두고 온 고향의 신을 숭배하는 향토(鄉土) 신앙이나 선조를 기리는 조사(祖師) 신앙이 풍미했다.

조사신상을 모시고 청수조사를 모신 사당으로 향하는 행렬
2017년 나는 단수이(淡水)에서 푸젠성 융춘(永春) 출신으로 천(陳)씨 가문의 청수(清水) 조사를 모시는 행렬과 만났다. 그들은 문중 종가에서 모시고 나온 조사신상을 도심의 한 사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행렬을 따라 도착한 곳은 청수암이었다. 청수암은 1937년에 건립된 청수조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대만의 4대 조사묘(祖師廟)로 손꼽힌다. 청수암에서 천 씨 가문 후예들은 조상신을 향해 경건히 제사 지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직업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다. 이는 도교 사상과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난 신들이다.

현재 대만에서 국가 지정 유적으로 지정된 사전무묘
여기에는 각종 종교의 성인을 모시고, 역사의 위인을 받들며, 자연의 특정 사물을 숭배하는 이들도 있다.

여러 종교와 신을 조화롭게 모시는 대만인들의 모습은 타이난(臺南)의 사전무묘(祀典武廟)와 대천후궁(大天後宮)에서 엿볼 수 있다. 사전무묘는 1665년 정성공이 건국한 동녕국(東寧國) 시기 대만에서 최초로 세워진 관제묘다. 말 그대로 명나라 때 황제로 추존되었던 관우를 모시는 도교 사당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내에 불교, 유교, 민간신앙까지 품고 있다. 실제로 정전 뒤에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청이 있다.

대천후궁에서 마조를 향해 제를 올리는 젊은 부부
뿐만 아니라 유교 사당인 삼대청(三代廳), 민간신앙의 월하노인(月老)을 모시는 월로사가 있다. 그에 반해 대천후궁은 본래 명조의 살아남은 황족 처소로 지었다. 이를 1684년에 마조 사당으로 개조하여, 대만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마조를 모시는 정전 뒤에는 다른 민간신앙의 신을 모시는 후전을 두었고, 옆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전을 세웠다.

사실 타이난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도교나 민간신앙 사당이 대만에서 가장 많은 도시다. 왜냐하면 타이난이 17세기 이래 대만의 행정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타이난의 한 거리에 세워져 남아있는 석패방
1625년 네덜란드는 스페인이 지배한 대만 북부를 피해서 남부를 점령했다. 그리고 타이난에 행정센터인 츠칸러우(赤嵌樓)를 건립했다. 1655년에는 이를 유럽 양식으로 증축했다.

현존하는 츠칸러우는 훗날 대만인들이 중국식으로 개보수한 것이다. 츠칸러우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는데, 동녕국뿐만 아니라 청조도 타이난을 행정 중심지로 삼아 더욱 발전시켰다.

이런 상황은 1885년 청조가 대만을 성(省)으로 승격시킬 때까지 지속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타이난은 푸젠에서 건너온 주민들의 후예가 절대다수다.

타이난시 외곽에 자리 잡은 산화(善化) 맥주공장
타이난이 가오슝(高雄)과 함께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대표적인 텃밭으로 자리 잡은 배경은 이러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직선제가 시행된 이래 선출된 타이난 시장은 민진당이 독점했다. 라이칭더(賴清德) 총통도 타이난 시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대만 당국은 유서 깊은 타이난에 맥주공장을 설립했다. 1975년에 문을 연 산화(善化) 맥주공장이 그것이다.

대만에서 맥주를 처음 양조한 것은 1920년이다. 일본인들이 외국에서 설비와 맥아를 들여와 타이베이에 공장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젠궈(建國) 맥주공장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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