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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데 좋고 싫음도 드러내지 말라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8.04 09:01|수정 : 2024.08.04 09:01

[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군주의 호오는 자신을 겨누는 칼이 된다 (글 : 양선희 소설가)


양선희 중국본색
고대 제왕학에서는 군주, 혹은 최고 리더의 첫째 덕목으로 좋고 싫어하는 기색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꼽습니다. 그 유명한 춘추시대 재상의 지존으로 꼽히는 관중은 이렇게 말합니다.

"군주는 한스러워도 노여워해서는 안 되고, 노여워도 비난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선 안 되고, 계책이 있더라도 남과 상의해선 안 된다."

군주가 호오의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고 줄곧 주장하는 한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면 신하는 스스로 잘 보이려고 꾸밀 것이다.
군주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순간 신하들은 자신의 의견을 감추게 된다.
좋고 싫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의 속마음이 드러날 것이고, 재주와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들이 스스로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다.
군주가 뭔가 좋아하면 일이 많아지고, 미워하면 원한을 산다. 그러므로 좋아함과 싫어함을 버려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 도가 깃들 것이다. 왕이 신하와 사리사욕을 공유하지 않으면 백성이 존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일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이에 한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명군의 도는 잘하는 자에게 잘하는 일을 시키는 데에 있다."

군주도 사람인데 좋고 싫은 걸 어떻게 표현하지 않을 수 있냐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군주 자리가 요구하는 대가이기도 합니다. 군주의 호오가 분명하면 그 주변도 분주하고 시끄럽지만, 가장 나쁜 일은 자신의 호오가 자신을 겨누는 칼로 돌아와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들이죠.
 
#2
정나라 군주는 이미 태자를 세웠다. 그런데 군주의 총애하는 미녀가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다. 이에 태자의 어머니이자 군주의 부인은 이를 두려워하여, 독약을 써서 남편을 비참하게 죽였다.
 
#3
초나라 성왕은 아우 상신을 태자로 세워놓고, 다시 아들 공자직을 세우려고 했다. 상신이 이를 들었으나 아직 확인하지 못해 반숭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있겠는가?"
반숭은 말했다.
"성왕의 누이인 강비를 초대한 뒤 불경스럽게 대해보십시오."
태자는 이 말대로 했더니 강비가 말했다.
"오호라 천한 놈 같으니라고. 군왕께서 너를 폐하고 직을 세우려는 것이 당연하구나."
상신이 "정말이구나" 하니 반숭이 말했다.
"이제 그분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못한다."
"제후에게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할 수 없다."
"그럼 대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건 할 수 있다."
그러고는 곧바로 숙소의 군사들을 일으켜 성왕을 쳤다. 성왕은 곰 발바닥 요리나 먹고 죽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상신이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자살했다.
 
#4
한외는 한나라 애후의 재상이었다. 엄수는 군주가 중용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 심하게 싫어했다.
어느 날 엄수가 사람을 시켜 조정에서 한외를 찔러 죽이도록 했다. 이에 놀란 한외가 도망치며 군주를 껴안자 결국 한외를 찌르고 겸하여 애후도 찔렀다.
 
#5
전항은 제나라 재상이었는데, 그의 군주인 간공이 또 다른 신하인 감지를 두텁게 신임하고 있었다. 전항과 감지는 서로 미워하고, 서로 해치고 싶어 했다. 전항은 감지를 좋아하는 간공까지 미워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사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얻어 그 나라를 취하고, 마침내 간공을 죽이고 정권을 빼앗았다.

그런가 하면 군주가 누군가를 총애하면, 총애받는 사람은 일을 꾸미고, 그리하여 주변에 뜻하지 않은 위험에 처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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