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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폭우에 일하는 기사들…"새벽 배송 안 받을래요" 소비자도

유영규 기자

입력 : 2024.07.29 08:41|수정 : 2024.07.29 08:41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직장인 이 모(29) 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용하던 새벽 배송 서비스를 앞으로는 웬만해선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폭우 속 새벽 배송을 하던 40대 기사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단 소식을 접하고서입니다.

이 씨는 "장 보러 가는 수고로움을 덜려고 새벽 배송을 즐겨 시켰는데 이런 날씨에도 배송을 다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당일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신선한 식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편리함 덕에 심야·새벽 배송 시장이 크게 확대됐지만, 궂은 날씨에도 일하는 배송 기사들을 생각하면 선뜻 이용하기가 꺼려진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로 갈수록 폭우나 폭염의 빈도가 늘어나는 가운데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을 마쳐야 하는 기사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새벽 배송을 끊거나 줄이겠단 이들도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 모(29)씨는 "새벽에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로켓배송을 이틀에 한 번꼴로 시켰는데 폭우에 폭염이 이어져 웬만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시키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선식품은 퇴근길에 마트에서 직접 사오고 휴지처럼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것만 꼭 필요할 때 로켓배송을 시킨다"며 "배송 기사님이 목에 두른 수건에서 땀을 짜내는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배송받을 때쯤 얼린 음료수를 놓아두고 (가져가시라고) 메모를 남기 적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직장인 오 모(34)씨 역시 "원래는 신선하게 먹으려고 매일매일 로켓배송을 시켰는데 장마에 무더위까지 시작되고부터는 미안해서 바로 먹을 게 아니면 안 시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택배 배송 기사들은 갈수록 악화하는 기상 상황이 업무강도를 더 가중하고 있으며, 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된 '폭염 속 노동 실태 및 제도개선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현장 증언을 한 쿠팡 배송 기사는 "폭우가 쏟아지면 잠시 쉬었다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끝낼 때까지 택배 노동자들은 보통 비를 맞고 일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비가 오면 사람만 젖는 게 아니라 배송해야 할 상품도 어쩔 수 없이 젖게 되는데 이에 따라 상품 파손도 빈번해진다"며 "그렇게 파손된 상품은 택배 노동자의 과실로 잡혀 변상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주로 신선식품을 주문하는 심야·새벽 배송의 경우 이른 아침 정해진 시간 전까지 주어진 물량에 대한 배송을 마쳐야 하는 탓에 갑작스러운 폭우 등 악천후에도 일을 이어 나가야만 하기 십상입니다.

배송업체들은 폭우 등 악천후 상황에서는 배송 중단 조처를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최근 집중호우에도 쿠팡이 일부 물류센터에서 무리한 새벽 배송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쿠팡CLS는 "기상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배송 기사들에게 폭우 상황에 따라 배송 중단 안내 팝업창과 안전 문자 등을 발송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배송 기사들은 이런 배송업체들의 공지만 믿고 배송을 중단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배송업체와 택배 대리점(영업점)이, 대리점과 배송 기사가 계약을 맺고 있는 구조에서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우려하지 않고 기사들이 자체적으로 배송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단 것입니다.

이에 예보에 따라 정해진 기간 당일배송 등의 의무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악천후에는 실질적으로 배송을 중단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이 필요하단 제언도 나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고객과 배송업체 모두 연관돼 있어 쉽지는 않지만, 긴급한 상황, 천재지변이면 (일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 같은 것이 필요하다"며 "남용 우려에 대한 부분은 세부적인 규정으로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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