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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녕·박성현·기보배…여자단체 10연패 명궁의 역사

김진우 기자

입력 : 2024.07.29 02:21|수정 : 2024.07.29 02:21


▲ 김수녕 선수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10연패 신화가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서 완성됐습니다.

임시현(한국체대), 남수현(순천시청), 전훈영(인천시청)으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파리의 역사적 명소 레쟁발리드에서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3년 전 도쿄 대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 종목에서 우승해온 한국 여자 양궁은 이번 우승으로 '10연패'를 이뤄냈습니다.

올림픽에서 특정 나라가 특정 종목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금메달을 독식한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1984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남자 수영 대표팀의 남자 400m 혼계영 10연패, 1988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여자 탁구의 단식 9연패, 같은 기간 중국 여자 다이빙의 스프링보드 9연패 등이 비견되는 사례입니다.

김수녕, 박성현, 기보배 등 국가대표 명궁들과 한국 양궁 경기·행정인 전체의 끊임없는 노력이 36년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 여자 양궁의 역사는 김수녕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서술할 수 없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고교 2학년생이던 김수녕은 왕희경, 윤영숙과 여자 단체전에 나서 인도네시아에 30점 차 낙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이은경, 조윤정과 두 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습니다.

1993년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김수녕은 1999년 다시 활을 잡더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김수녕은 김남순, 윤미진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12점 차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3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김수녕은 개인전까지 더해 올림픽에서 총 4개의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수확했습니다.

지금까지 김수녕보다 많은 금메달을 따낸 양궁 선수는 없습니다.

시드니를 끝으로 은퇴한 김수녕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자제들의 양궁 교사가 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가 올해 초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김수녕의 말은 양궁의 금과옥조로 여겨집니다.

올림픽에서 김수녕 다음으로 많은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인은 박성현과 기보배로, 3개씩을 수확했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개인전 우승을 경험해 유일한 '양궁 그랜드슬래머'로 남아 있는 박성현은 올림픽 단체전에서 대표팀의 두 차례 우승에 이바지했습니다.

윤미진, 이성진과 함께 출전한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중국을 상대로 펼친 결승전은 명승부로 회자됩니다.

엎치락뒤치락 접전이 펼쳐진 가운데 마지막 사수로 나선 박성현이 10점을 쏘면서 한국은 241-240, 1점 차로 우승했습니다.

홈 텃세가 유독 심했던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도 박성현은 주현정, 윤옥희와 흔들림 없이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기보배가 배턴을 이어받아 이성진, 최현주와 폭우 속 값진 금메달을 손에 쥐었습니다.

결승전 직전부터 비가 내려 팬들이 마음을 졸여야 했으나 선수들은 끄떡없었습니다.

막내였던 기보배가 마지막에 9점을 쏘면서 중국에 단 1점 앞선 한국이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렸습니다.

여자 대표팀은 세트제가 처음 도입된 2016년 리우 대회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며 8연패를 이뤄냈는데, 이때도 기보배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박성현은 전북도청 감독으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6년 만에 국가대표로 뽑혀 화제를 모았던 기보배는 지난 2월 은퇴한 뒤 모교인 광주여대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이번 대회에선 박성현과 기보배 모두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파리에 와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양궁 여자 단체전 대표팀의 신화는 2020년대에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코로나19로 1년 늦게 열린 도쿄 대회에서 안산, 강채영, 장민희가 9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습니다.

올해는 파리에서 낭보가 이어졌습니다.

도쿄 대회와 파리 대회 모두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선수들이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두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초짜'들이 한국 여자 대표팀의 단체전 엔트리를 채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도 10연패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배경엔 최강의 궁사를 선발해내는 투명한 선수 선발 시스템이 있습니다.

새내기부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온전히 실력만으로 총 5차에 걸친 살얼음판 승부를 펼쳐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뽑습니다.

정성적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정량적 요소로만 선수 간 우열을 가려냅니다.

그러다 보니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한국 양궁 대표팀 선발전 통과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시스템 아래서 각 실업팀, 대학팀, 유소년팀 지도자들은 파벌 싸움 없이 선수 육성에만 전념하고, 대한양궁협회의 행정인들은 투명한 행정으로 경기인들을 뒷바라지합니다.

최경환 대한양궁협회 사무처장은 "여자 단체전 10연패는 양궁 경기인, 행정인이 서로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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