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가격 13만 원의 의미
"김 선생님은 CPR 분당 100회를 유지해 주시되 늑골이 골절되지는 않게 주의해 주세요. 박 선생님은 에피네프린 원 앰플 정맥으로 다시 슈팅해 주시고, 이 선생님, 환자 따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K는 5명의 응급심폐소생술 팀원들을 진두지휘하면서 보호자의 도착 여부를 계속 묻는다. 심장이 멎은 상태로 온 70대 환자의 보호자로 아내가 있었다. 20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심장은 다시 뛸 생각이 없었다. 사망 선고를 하려는 순간, 환자의 아내는 '외동딸이 오고 있는 중이라며 그때까지만 심장이 뛰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평소 깐깐한 K는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달리 보호자를 위한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지난달 대구 학회에서 마주한 K는 40분 넘게 진행한 심폐소생술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제가 딸 바보이잖아요. 제 심장이 멎었을 때 제 딸이 오고 있다면 저도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있고 싶을 것 같았어요. 아빠의 임종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을 딸에게 남겨 주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K는 소주잔을 벌컥 들이켜더니 깍두기를 어물어물 씹으며 말을 이어갔다.
"중증 환자가 오면 대기하고 있던 응급의학과 교수를 콜 하거든요. 저보다 연조가 어려서 편하게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다가 딸이 도착해서 사망 선고를 했고요, 참았던 용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그 젊은 교수가 토하고 있더라고요. CPR 힘들게 하면 토 나오는 거 아시죠?"
나도 전공의 때 경험했다고 대답한 후 그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그는 단번에 들이키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조 기자님, 저희 심폐소생술 수가가 얼마인지 아세요? 13만 원입니다. 돈 벌자고 하는 건 아니지만, 5명의 심폐소생술 팀이 토하도록 일하는 값이 13만 원이라니,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은 하지만 뇌 수술은 안 한다
60대 환자가 지역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2주 전부터 시작된 두통이 최근 심해졌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의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것저것 물었더니 정확하게 대답했다. 이번엔 팔과 다리의 감각과 운동 신경을 살펴보았다. 좌측의 팔다리 힘이 약간 떨어져 있었다. 이럴 경우 만성 경막하 출혈을 의심해야 한다. 의사는 뇌 CT 검사를 진행했고, 예상대로 뇌출혈이 확인됐다. 만성 경막하 출혈은 뇌출혈 치고는 경미한 것에 속한다. 급작스럽게 악화하지 않고, 수술 테크닉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얕볼 수는 없다. 자칫 뇌를 잘못 건드리면 환자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중환자실이 확보되지 않으면 수술 진행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병원은 환자를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로 상급종합병원에 전원시켰다. 상급종합병원 의사는 환자가 가져온 뇌 CT와 진료 의뢰서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뇌를 짓누르는 뇌 혈종의 양은 수술이 필요한 정도였다. 진료 의뢰서에 기술된 것처럼 환자의 의식은 명료했고, 왼쪽에 편마비가 약하게 있었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수술을 바로 하겠다'라고 하며, '다만 그전에 뇌 CT를 한 번 더 찍어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환자는 뇌 수술을 받은 후 편마비가 완전히 사라졌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뇌출혈 환자의 사례는 지난달 부산에 개최된 한 학회에서 발표됐다.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데 필요한 질문은 딱 두 개뿐이다. 첫 번째, 왜 지역 종합병원은 CT 검사 장비는 확충하면서 중환자실 수는 늘리지 않았을까? 두 번째, 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불필요하게 뇌 CT를 또 찍었을까?
우리나라 CT 보유 숫자는 인구 100만 명당 42대로 OECD국가 중 8번째로 많다. 인구 1천 명당 CT 검사 건수는 281건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이다.
올해 초 질병관리청의 자료에 따르면 의료 방사선 검사로 인한 전 국민의 연간 피폭선량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2022년 기준 141,831맨시버트(man·Sv)로 세계 평균에 비하면 5배가량 높고, 미국, 유럽연합 등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일반 엑스레이 촬영이 2억 8,200만 건으로 전체 검사 건수의 80.2%를 차지하지만, 피폭선량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 65.6%로 가장 많았다. 필요한 검사로 받는 피폭선량이야 감수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대한영상의학회 학회에서는 '불필요한 영상 검사 줄이기'라는 세션이 따로 마련됐다. 이 세션에서 '빅5를 포함한 국내 최고 대학병원에서조차 불필요한 영상 검사가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공개됐다. 대한영상의학회 회장 정승은(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단지 CT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비급여 검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통계에 잡히지는 않지만, 국내 MRI 검사 건수도 세계 최고로 많고, 저희 영상의학과 학회가 판단하기엔 불필요한 검사도 적지 않습니다."
대형 병원의 생존전략
지난 3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빅5 병원장들이 비공개로 만나 현행 의료 수가에 대해 논의했다.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료 가격을 제대로 교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뇌 수술을 포함해 수술 분야 수가는 원가의 81.5%, 심폐소생술, 기관 절개술 등 처치는 원가의 83.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기관의 조사에서도 나온 것이니, 필수 의료는 할수록 손해라는 의사들의 투정이 거짓말이 아닌 게 또 확인된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