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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임대인' 절반, 세제 혜택 누리며 사업자 자격 유지

하정연 기자

입력 : 2024.07.17 14:07|수정 : 2024.07.17 14:07


▲ 서울 시내의 주택 밀집지역

전세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어 명단이 공개된 '악성 임대인' 절반이 여전히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며 세제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1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악성 임대인 명단에 오른 127명 중 67명(53%)이 등록 임대사업자이며, 이들은 악성 임대인 등재 후에도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악성 임대인 34명 중 25명(74%)이, 경기는 48명 중 26명(54%)이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아직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는 악성 임대인 67명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HUG가 대신 반환한 금액(대위변제액)은 무려 7천124억 원에 이릅니다.

1인당 106억 원 수준입니다.

대위변제 건수는 3천298건입니다.

3천 명이 넘는 전세 피해자가 양산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임대사업자로서 취득세·재산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합산 배제, 양도소득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임대사업자가 보증금 반환을 지연해 임차인 피해가 명백히 발생한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말소하도록 규정(제6조12항)하고 있습니다.

'임차인의 피해' 판단 여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데, 임차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됐으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성립에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로 한정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악성 임대인이 여전히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년 6개월간 보증금 미반환으로 임대사업자 자격이 말소된 사례는 7명에 불과합니다.

악성 임대인으로 명단까지 공개했다면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임대사업자 자격 유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런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명단 공개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진석 의원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쓰지 않으려 하면서 악성 임대인들이 받는 세제 혜택은 방치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전세사기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법령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상습적으로 보증금 채무를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의 이름과 나이, 주소,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 채무 불이행 기간 등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HUG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대신 돌려주고서 청구한 구상 채무가 최근 3년간 2건 이상이고, 액수가 2억 원 이상인 임대인이 명단 공개 대상입니다.

지난 6월 23일 열린 '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및 정부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전세금을 제때 내어주지 못해 임대사업자 등록이 말소된 지 6개월 이상이 지났는데도 1억 원 이상의 미반환 전세금이 남아있는 임대인 명단도 공개됩니다.

지난 6월 23일 127명이던 공개된 악성 임대인은 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추가 개최로 7월 16일 현재 208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발생한 보증금 반환채무는 총 3천606억 원, 평균 17억3천만 원에 이릅니다.

법을 소급 적용하지는 않아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의 근거를 담은 개정 주택도시기금법 시행(지난해 9월 29일) 이후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1건 이상 있고, 미반환 전세금 규모가 2억 원 이상이어야 명단 공개 대상이 됩니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전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까지 포함하면 악성 임대인들의 보증금 반환채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떼어먹은 보증금 규모가 가장 큰 악성 임대인은 강원 원주에 거주하는 손 모(32) 씨로, 임차보증금 반환채무가 707억 원입니다.

경남 창원에 주소지를 둔 법인 S개발은 137억 원을,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이 주소지인 J사는 127억 원을 제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어 인천 부평구 십정동이 주소로 등록된 68세 정 모 씨(110억 원), 전남 광양이 주소지인 S토건(95억 원), 경기 남양주시 거주 30세 김 모 씨(80억 원)의 보증금 반환채무 규모가 컸습니다.

최연소 악성 임대인은 인천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23세 이 모 씨로 4억 6천만 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최고령은 6억2천만 원의 보증금 반환 채무가 있는 서울 동대문구 거주 82세 최 모 씨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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