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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수 나왔는데 태극기 등장? 총리까지 사과한 소동의 전말 [스프]

권종오 기자

입력 : 2024.07.20 09:01|수정 : 2024.07.20 09:01

[별별스포츠+]


권종오 별별스포츠+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주요 국제 대회에서는 경기 전과 시상식에서 출전국의 국가를 연주하고 국기를 게양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주최 측 실수로 엉뚱한 국가와 국기가 나와서 당사자들이 매우 당황한 사례들이 꽤 있었습니다. 대부분 단순 실수로 일어난 일이어서 주최 측에서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는 파문이 커져서 개최국의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애국가 대신 2회 연속 스페인 국가

권종오 별별스포츠+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대한민국과 스페인과 대결했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팀에는 황선홍, 홍명보, 김주성, 고정운 등 스타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국가 연주 때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댈러스 코튼보울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먼저 스페인 국가가 연주됐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간판 공격수 살리나스, 그리고 현재 이강인의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페르난도 이에로, 당시 주장이었던 미구엘 앙헬 나달(스페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의 삼촌) 등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습니다. 스페인 국가 '왕의 행진곡' 연주는 정상적으로 끝났습니다.

권종오 별별스포츠+
이제 우리나라 애국가가 연주돼야 하는데 엉뚱한 음악이 나왔습니다. 들어보니까 방금 전 연주됐던 스페인 국가를 다시 연주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당연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애국가 연주 때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할 수 없었고 관중석에 있었던 우리 관중들도 표정이 안 좋았고, 이렇게 스페인 국가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습니다. 잘못된 국가 연주가 끝나자 우리로서는 기분이 몹시 찜찜했습니다.

권종오 별별스포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최 측에서 곧바로 실수를 인지하고, 바로 제대로 된 애국가를 연주했습니다. 이때 인상적이었던 게 당시 댈러스 코튼보울 스타디움에 우리 응원단도 많이 왔는데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함께 제창하며 한국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당연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이렇게 애국가 연주가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니까 국가 연주를 원래는 2번 하는 건데, 주최 측 실수 때문에 3번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소동을 겪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스페인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쳤습니다. 후반에 먼저 2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지만 후반 40분 이후 홍명보와 서정원이 두 골을 몰아치며 극적인 2대 2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U-19 아시아 축구 챔피언십 우리나라와 요르단의 조별리그 경기 때는 우리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곧장 항의하자 주최 측은 북한 국가를 중간에 끊고 다시 애국가를 틀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공식 항의하자, AFC는 사과했습니다. 우리 축구 대표팀의 공식 국제 경기에서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나오는 사고가 벌어진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출전도 하지 않은 칠레 국가 연주

권종오 별별스포츠+
우리나라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도 이와 같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2017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우루과이와 일본의 조별리그 경기.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우루과이가 아닌 칠레 국가가 연주된 것입니다. 심지어 칠레는 이 대회에 출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칠레 국가가 연주되자 우루과이 선수들은 모두 어리둥절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이게 뭐지?'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동요하자 한 선수가 나서서 "자, 자, 자,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며 동요하지 말라고 진정시켰습니다. 그러자 다른 선수도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야", "자, 자, 집중하자고!" 이렇게 말하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습니다. 벤치의 코칭스태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우루과이 관중도 당황했습니다. 관중석에서 야유하는 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엉뚱한 칠레 국가 연주가 끝났습니다.

이어서 상대팀 일본 국가는 제대로 연주됐습니다. 실수를 인지한 주최 측은 일본 국가 연주가 끝나자 곧바로 제대로 된 우루과이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이때 일본 국가 연주가 끝나고 평소처럼 양 팀의 대형 국기를 든 진행요원들이 퇴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루과이 국가를 다시 연주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루과이 국기를 든 진행요원들은 퇴장하다 말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FIFA 관계자가 우루과이 벤치로 가서 우루과이 국가 연주를 다시 하겠다고 말해줬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재생 오류로 인해 우루과이 국가 연주를 다시 한번 재생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방송했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자국 국가가 연주되자 우루과이 선수들은 힘차게 국가를 따라 불렀습니다. 우루과이 국가 연주가 끝나자 선수들은 파이팅을 외치고, 우루과이 관중도 박수치며 환호했습니다. 우루과이로서는 경기 전부터 언짢은 일을 당했지만 경기에서는 2대 0으로 승리하며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북한 선수 소개하면서 태극기 표시

권종오 별별스포츠+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축구 조별리그 북한과 콜롬비아의 1차전, 경기 시작 20분 정도 앞두고 정말 큰 사달이 났습니다. 북한 선수를 소개할 때 인공기가 아닌 태극기가 전광판에 표시된 것입니다. 이를 본 북한 선수들은 몸을 풀다 말고 경기장을 나갔습니다. 북한팀 관계자는 강하게 항의하며 경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직위가 바로 전광판에 인공기를 띄우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북한 선수들이 계속 경기장 입장을 거부하면서 경기 시작이 지연돼 관중과 기자들은 하염없이 북한 선수들의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경기는 예정보다 1시간 5분이나 늦게 가까스로 시작됐고 북한이 2대 0 승리를 거뒀습니다.

신의근 당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다시 항의했습니다. "대표팀 경기에서 국기가 잘못 표기된 것은 대단히 큰 문제다. 이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으면 경기장에 끝까지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히 전광판의 실수가 바로잡혔고, 비록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대회 조직위원회와 국제축구연맹에서 사과의 뜻을 전해와 경기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직위 측에 경고하며, "우리 선수들이 다른 나라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권종오 별별스포츠+
당시 이 북한의 국기 소동은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이 소동은 영국 주요 방송과 일간지에 크게 보도되는 등 당시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명백한 실수였다며 북한 선수단에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대회 조직위는 우리 한국 선수단에도 인공기 대신 태극기를 잘못 게시했다고 사과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도 이러한 실수가 벌어진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까지 나서 사과의 뜻을 밝히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자 축구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이틀 뒤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개회식 때 북한 선수단은 '태극기 소동'을 의식한 듯 보란 듯이 대형 인공기를 펼쳐 들고 입장했습니다. 참가국 가운데 유일하게 두 개의 대형 국기를 들고 입장한 것입니다. 맨 앞에서 기수 박성철(마라톤)이 조직위에서 제공한 인공기를 힘차게 휘둘렀고, 바로 뒤 선수단 한가운데에서 더 큰 인공기를 펼쳐 들었습니다.

입장이 끝난 뒤에도 북한 선수단은 인공기를 계속 흔들었습니다. 이틀 전 여자 축구 경기에서 태극기가 북한 국기로 잘못 게시된 사건을 의식해 인공기를 강조한 시위로 해석됐습니다. 그런데 이 북한 선수단 입장 사진이 IOC 트위터에 '팀 코리아(Team Korea)'로 소개돼 또 문제가 됐습니다. '팀 코리아'는 대한체육회가 정한 우리 한국팀의 공식 명칭입니다. 즉, IOC가 북한을 한국 선수단 공식 명칭인 '팀 코리아'로 소개한 것이어서 인터넷상에서 또 논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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