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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수거? 안 돼요" 이렇게 답할 수 있으려면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7.09 09:02|수정 : 2024.07.09 09:02

[갑갑한 오피스] (글 : 권남표 노무사)


권남표 갑갑한 오피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한 직장에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했다. 출근할 때 입구에 있는 사장에게 맡기고 들어가란 말이었다. 회사는 '근무 중 업무와 상관없는 스마트폰 사용 절대 금지'라고 사규에 적었고, '경고를 무시하고 사용하면 1회 적발 시 시말서 제출'이라고 경고했다.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한 콜센터의 일 때문이었다.

수년간 한 금융회사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핸드폰을 반납하라고 시켰다. 출근할 때 사무실 입구에 설치된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할 때 핸드폰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 점심시간에는 한시적으로 핸드폰을 돌려줬다. 군대에도 핸드폰이 반입되고, 성인인 대학생들이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 온갖 통신장비를 지니고 학교 수업을 듣는 시대에, 누구 하나 스마트폰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는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건 방송사 기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금융회사에 문의를 했다. "왜 핸드폰을 수거하시나요?"

금융회사는 답했다. "휴대전화 금지 조치는 고객정보 유출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고객상담 업무 이외 시간이나 휴게시간에는 사용이 자유롭고, 근무시간 내에도 사무 공간에서는 필요한 휴대기기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일률적으로 휴대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시간 내 근무 공간 일부에서만 제한하는 것으로, 근무시간 내에서도 영업장 외부에서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친구 몇 명과 이야기를 하다가 놀랍게도 찬반이 나뉘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납이 속 편해" 파와 "지금이 몇 년도야" 파는 각각 이렇게 말했다.

권남표 갑갑한 오피스
"반납이 속 편해" 파 : 직장 그거 돈만 벌고 가면 되는 데고, 가서 딱히 다른 일 할 거 없잖아. 그리고 근무 공간 밖에 나갈 때 전화기 가지고 가면 되는 거 아냐? 기밀정보 취급하는 군시설 들어갈 때 나도 핸드폰 반납하고 들어가. 보안 받아서 노트북은 갖고 들어가도, 콜센터에서 전화기 쓸 시간도 없이 전화 쏟아지고, 성과도 채워야 하는데 굳이 그거 갖고 들어가야 되나?

"지금이 몇 년도야" 파 : 요즘 핸드폰이 뭐 게임하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그런다고 전화기가 아니냐. 너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다른 연락도 좀 주고받고, 하다 보면 급한 연락 올 때도 있고. 거기다가 핸드폰 없으면 불안하잖아. 거기다가 뭔 기밀이야. 개인정보 유출하려면 USB나 사진기 몰래 가지고 가서 촬영하면 되지. 이거 그냥 사람들 굴려먹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못된 모습이야. 이게 몇 년도냐.

권남표 갑갑한 오피스
노무사 일을 하는 필자는 자연스레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행해진 괴롭힘인가?"를 우선 따지다가 가만히 듣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속 편해 파'와 '쌍팔년도 파' 둘 다 핸드폰 수거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찬반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이야기는 "사장은 지시하는 사람이고, 콜센터 직원은 따르는 사람이다"라는 출발점은 같았다. 부당한 지시와 부도덕한 청탁, 비윤리적인 요청, 요구 등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런 피로한 논란은 생기지도 않는다.

부당하고 나쁜 지시를 받았을 때 잘못됐다며 거부하는 발언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핵심인데, 한국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직장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장의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해고와 계약 만료의 권한, 근무지를 변경하는 수법, 은근하게 괴롭히는 수단 등으로 일상이 틀어지면 원상복구를 하는 데에 드는 시간과 돈은 상당히 피곤하기까지 하다. 수틀리면 거부하고 마음껏 그만두더라도 생계가 유지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든, 사내 규정을 민주적으로 정하는 든든한 노동조합이든, 사용자에게 강하게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든 있어야 직장인이 '아니요', '싫어요'라고 말하기가 쉬워진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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