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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업계는 그럴 수밖에 없어" 그 말에 숨어 있는 함정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7.02 09:01|수정 : 2024.07.02 09:01

[갑갑한 오피스] (글 : 이진아 노무사)


이진아 갑갑한 오피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IT 업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왔다. 팀원인 A 씨는 팀장이 본인에게만 주요한 업무를 할 기회를 주지 않고 허드렛일만 맡긴다고 말했다.

팀장은 행위자 조사 과정에서 답답해했다. IT 업계는 팀에 맡겨지는 미션이 있고, 그 업무를 쳐내는 것도 버거운 와중에 한 사람이 자기 몫을 못 해낸다는 것은 팀에 큰 손해이고 다른 팀원들에게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라고 하며, 오죽하면 A에게 업무를 못 줬겠냐고 했다. 업무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업무에 대한 애착이나 성의가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실수가 잦았기에 주요 업무를 줄 수 없음은 물론이고, 2차 점검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되는 업무들만 줄 수 있다고 했다. 팀장 역시 과중한 업무 부담 속에서 힘겨워 보였다.

IT 업계의 호황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IT 업계 연봉이 꾸준히 상승하였고, 그에 따라 성과 중심적 사고 역시도 그들 사이에서 넓게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 일이 미숙한 사람은 동료의 협조가 필요한 사람이라거나 조직의 교육 및 양성 등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보다는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 조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들이 한편에서 자리잡기도 하였다.

이진아 갑갑한 오피스
필자가 IT 업계에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하러 갔을 때였다. 성과 달성을 독촉하며 행해졌던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얘기하던 중, 듣고 계시던 한 분께서 '그러면 성과 독촉을 하지 않고 제가 그걸 다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해야 할 업무들을 그냥 하지 않거나(FAIL) 지연시키는(DELAY) 게 맞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셨다.

공격적인 질문이 아닌,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난감해하시는 질문이었다. 밀려 내려오는 업무들에 대한 처리와 더불어 성과를 달성해야 할 1차적 의무를 지고 있는 팀장의 직위에서 의도치 않게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답답한 토로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우선 도저히 제 시간 내에 할 수 없는 업무라면 그렇게 업무가 떠밀려오는 회사 내 업무 부여에 대해서 일단 재고가 필요한 거 아닐까요?'라고 답변을 시작하였다. 업무가 초과근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강도로 요구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통상근로자들은 법정근로시간인 일일 8시간을 기준으로 근무하기로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그럼에도 업무가 초과근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양으로 주어진다면 이건 엄밀하게 말하면 계약 위반이다.

일일 8시간 근무로 부족한 업무량을 맡기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를 '일하다 보면 이럴 수 있지', '일개 회사원인데 그냥 좀 억울해도 따라야지 별 수 있어?'하고 그저 참고 넘겨왔을 뿐, 계약과 맞지 않는 업무 부여 자체가 우선 문제가 되어야 한다.

이진아 갑갑한 오피스
어디에나 저성과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성과자들이 적절한 업무와 역할을 맡지 못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속된 말로 '일머리'가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즉, 적절한 교육과 역할 부여, 동기 부여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동기 부여, 배치의 문제, 그것이 소위 말하는 HR에서 구성원들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조직이 기본적인 HR 관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저성과자들은 개별적으로 무능하고 민폐를 끼치는 동료가 되어 조직 내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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