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피커] 20년 지나도 그저 소비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하여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인터뷰
Q. 피해자가 처음 '가해자 신상 공개'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A. 영상이 게시된 당일, 피해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상 게시 하루 이틀 뒤, 지인을 통해서 들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됐고요. 신상 공개 영상을 먼저 접한 가족들이 특히 걱정이 컸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런 영상이 올라왔어. 조회수가 되게 높아'라고 말하기엔 피해자의 상처가 깊어질까 걱정돼서 피해자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해자 신상 공개 영상 게시 사실을 뒤늦게 안 피해자는 '신상 공개에 동의한 적 없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유튜버는 피해자, 피해자 가족의 의견 중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만 취사선택해서 반영했고요. 피해자는 '가해자가 아닌 사람이 잘못 공표가 돼서 일이 커지면 어떡하지' 하며 놀라기도 하고, 여러 상황이 겹겹이 있기 때문에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입니다.
Q. 사건이 다시 재점화된 지금, 피해자는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나요?
A. 많은 분들이 피해자에게 '지금이라도 처벌하길 바라십니까?'라고 많이 물어요.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지금 이런 방식은 생각도 못 해본 일이잖아요. 피해자는 지금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살피고 있어요. 사실 지금은 특정 유튜버가 가해자들을 한 명씩 오픈하는 방식인데, 이 방식에 대해서 '그래, 이게 내가 생각한 해결이었어. 내가 꿈꾸던 거였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올라오는 영상의 댓글 중에는 '피해자는 왜 더 용기를 안 내냐', '피해자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런 댓글도 있거든요.
해결이라는 건 무언가를 꺼낼 수 있는 기회나 제도, 그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말이잖아요. 지금 이건 피해자 본인이 통제하고 기획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애초에 피해자가 준비한 게 아니니 '이제 마음이 후련하십니까? 이걸 원하십니까? 원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것이죠.
Q. 유튜버 신상 폭로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피해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의 의견을 본인들의 콘텐츠에 유리한 방식으로 편집해서 공표하는 행동 등을 보니까 뭔가 잘못됐을 때 정정 가능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피해자도 예측할 수 없는 절차구나' 싶었고요.
유튜버의 신상 공개는 명확한 룰이 있거나 한 게 아니에요. 유튜버 개인의 최소한의 윤리,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배려심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측할 수 없고, 피해자가 계속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콘텐츠가 올라가면, 마치 불법 촬영물 유포된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영상이 내려갈 때까지 계속 새로고침을 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예요.
A. 유튜브 영상과 기성 언론의 뉴스가 사실 되게 연동되어 있잖아요. '유튜브는 문제고 기성 언론은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밀양 사건 언급되는 게 뭐라도 뜨면 피해자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고 얘기했습니다. 콘텐츠가 될 수도 있고, 거기에 달린 댓글이 될 수도 있고요.
Q. 피해자가 겪은 성폭력 피해, 이번 신상 공개로 인한 2차 가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A. '성폭력 사건'이라고 하면 성적인 피해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이 끔찍하다는 등 행위를 중심으로 알려지지만, 피해자의 일상 회복 과제는 그보다 더 너릅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편견과 통념을 다 만나죠. 피해자 쉼터에 대한 설계, 주거권의 보장, 생계비 보장, 재활 등 장기적인 교육 훈련의 과정, 취약한 10대 시절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심리적인 지지망 형성 등을 너르게 설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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