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을 전환하는 시기를 겪는다. 나처럼 정리해고로 인한 실직이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건강 문제 혹은 결혼이나 이혼, 출산과 육아 등 가족 문제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와 크게 내상을 입힌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삶의 전환기를 환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명하게 넘길 수는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서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동네 마트에서 과일 피라미드를 쌓고, 커피숍에서 예쁜 하트가 올라간 라테를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어떤 손님이 나를 찾을까 기대하며 운전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호기심을 채우고 삶의 전환기를 가꿔간다."
"전 구글 디렉터, 현 실리콘밸리 N잡러, 모토로라 코리아와 한국 릴리의 마케팅팀과 홍보팀을 거쳤고, 2007년 구글 코리아에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합류해 12년간 근무했다. 나이 오십이 되던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나 비원어민으로서는 최초로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의 디렉터를 역임했다. 나이에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실행력으로 유퀴즈, 세바시 등에 출연하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그로부터 정확히 6개월 안에 16년 동안 근무했던 구글에서 이메일 한 통으로 정리해고됐다.."
"로이스, 구글이 정말 좋은 직장인 건 맞아. 너는 구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지. 네가 2-3년 뒤에 구글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그때는 네가 구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직급도 더 높아져서 절대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번에 회사가 먼저 네 손을 놓아준 게 아닐까? 두둑한 퇴직금 패키지까지 주면서 말이야. 얼마나 고마운 일이니?"
"그래, 나는 원래 하고 싶은 일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빈 종이를 꺼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목록은 금방 10개를 넘어섰다.
꼭 하고 싶었지만 회사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
-슈퍼마켓에서 일하기: 특히 트레이더 조의 크루 멤버 되기
-공유 운전 플랫폼(우버나 리프트) 운전사 되기
-스타벅스 바리스타 되기
-인앤아웃 버거에서 일하기
-레스토랑 바텐더로 일하기
-아동 도서 전용 서점에서 일하기
-도서관 사서로 일하기
-파머스마켓에서 한국 음식 팔기
-마사지사 되기
-치과 등의 병원 접수대에서 일하기
-꽃집에서 일하기
-반려동물 돌보기
-아이들 돌보기
-어르신 돌보기
-시니어센터 배식 자원봉사 시간 늘리
쭉 적어놓은 목록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나 자신이 서비스 혹은 제품이 되어 고객과 만나는 일이다. 둘째,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회사나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다.(일하면서 그 시스템을 몸으로 배울 수 있다면 더 좋다.) 셋째, 생활과 밀착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넷째,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 연습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정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주 15시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트레이더 조에서 1년도 안 되어 매니저가 된 지금은 일주일에 5번 출근해 주 45~50시간 일하고 스타벅스는 일주일에 3번 출근해 20시간 정도 일한다. 리프트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20시간 정도 운전했지만, 다른 이들이 바빠지면서 지금은 짬짬이 시간이 빌 때만 운전을 하고 있다.
컨설팅까지 네댓 개의 일에 영어 공부, 운동, 자원봉사...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엄청난 것 같지만 시간은 쪼갤수록 더 잘게 쪼갤 수 있다는 걸 걸 경험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할 건 없었다. 일단 시작했고, 시간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계획을 지금까지는 번아웃 없이 잘해오고 있다."
"1년 동안 600회 넘게 리프트 운전을 했고, 1만 잔이 넘는 음료를 만들었다. 키보드 위를 부드럽게 날아다녔던 뽀얀 손은 상품을 진열하고 커피를 내리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두툼하고 거칠어졌다. 1년 전과 달라진 손 모양은 나에게는 훈장 같은 것이 되었다. 그 어떤 타이틀도 없이 '자연인 로이스'로 산 알찬 1년을 격려하는 그런 훈장.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의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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