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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층수가 곧 권력이자 계급"…주제의식 사라지고 쓴맛만 남았다 [스프]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6.12 09:03|수정 : 2024.06.12 09:03

[취향저격] '더 에이트 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글 :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


디에이트쇼
이제 콘텐츠업계에서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드라마는 매우 드물거나, 있어도 흥행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원래 있지도 않은 웹툰 원작을 '흥행'을 위해 후반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영상 콘텐츠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은 흥행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장점은 '만화적 허용 또는 표현'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현실과는 다른 짜릿함을 선사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현실과 동떨어짐은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만화적 허용'이 개연성 또는 당위성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러한 현상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개연성이냐 만화적 재미냐. <더 에이트 쇼>는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더 에이트 쇼>는 박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첫 회를 보면, 단박에 <오징어게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금 그리고 게임.

승리자에게 상금을 주는 형식의 서사는 이미 다양한 콘텐츠의 익숙한 소재이지만, 우리에겐 <오징어게임>이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초반 1-2회만 지나도 단박에 <오징어게임>과는 전혀 다른 결의 드라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디에이트쇼
<더 에이트 쇼>는 돈으로 궁지에 몰린 8명의 참가자가 시간을 버티면 그에 상응하는 상금이 지급되는 어떤 '쇼'에 참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8명의 참가자들은 랜덤으로 각자 원하는 층을 뽑고, 그곳에 기거하며 상금을 쌓아간다. 상금은 층별로 차등 분배되는데, 층수가 즉 권력이자 계급이다. 층수(계급)에 따라 시급과 물가가 결정되므로 돈을 빠르게 많이 버는 높은 층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돈의 권력을 휘두른다.

돈을 지급하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참가자들을 휘두르고, 시간 즉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참가자들을 비웃듯 시간은 제멋대로 주어진다. 특히 참가자들의 게임이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흘러갈수록 시간은 늘어만 간다.

<더 에이트 쇼>는 피보나치 수열, 황금비 등 다양한 공식과 설정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설명하는 3층 류준열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방대하지만 막연하고 복잡하다.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날선 비판, 결국은 돈 많은 계층이 지배계층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쇼'라는 장치를 끌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 쇼의 전개 방식이 계급을 향한 투쟁과 부조리를 바꾸기 위한 여정 등에 집중된 것이 아닌, 그저 나쁜 8층의 횡포를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하며 잔혹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느껴야 할 주제의식은 사라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씁쓸한 뒷맛만 남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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