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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북적북적]

권애리 기자

입력 : 2024.06.09 07:05|수정 : 2024.06.09 07:05



[골룸] 북적북적 419: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은가요?

오늘은 일기를 함께 엿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가을 석 달 간 미국 아이오와에 체류했던 문보영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들고 왔습니다. 5월 8일에 출간됐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이 시작된 당시의 상황까지 담겨있는 기록입니다. 일기를 쓰던 당시, 딱 그때 문보영 시인의 호흡으로부터 아직 멀리 오지 않은 시점입니다.
 
아이오와의 글쓰기 프로그램(IWP,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은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여러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023년 가을,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되었다.

아이오와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드라마 [무빙]을 보고 있었다. 영화 속 트럭 짐칸에 앉은 류승범이 허허벌판을 바라보며 "아이오와 같네"라는 대사를 던지는 순간,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거 일종의 경고인가? 나는 좌석 벨트를 잘 맸는지 다시 확인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류승범은 7화에서 "마이 네임 이즈 아이오와…"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단다. [무빙] 덕분인지 사람들이 '아이오와'와 '오하이오'를 덜 헷갈리게 된 것 같다. 아이오와, 오하이오, 아이다호, 아이다호, 오하이오, 아이오와. 미국인들도 이 셋을 헷갈려 한다.

아마 문보영 시인도 "아이오와에서 석 달 있었어" 하고 얘기를 하면 이런 반응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어디라고?"

문보영 시인도 이야기하고 있듯, 미국인들도 아이오와와 오하이오와 아이다호를 많이 헷갈려 합니다. 한국인들이 생소하게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3년 전 아이오와를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항에서 제 신분증을 확인하던 미국인 직원이 저에게 "당신 진짜 여기 가고 싶은 거 맞아?" 그러면서 자기가 굉장히 재밌는 농담을 했다는 듯이 웃더라고요. 사실 아이오와에 살아봤거나 아이오와에서 온 친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지역 농담입'니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심심하다, 가도 가도 옥수수밭과 콩밭뿐이다…' 이게 미국 내에서도 아이오와의 이미지입니다. 사실 이 농담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오와 출신들입니다. 가끔 좀 진지한 친구는 이런 농담들 끝에 약간 쑥스러워 하면서 덧붙이곤 합니다. "아이오와 영어가 미국 표준 영어야.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쓰는 표준영어가 아이오와 영어야." 또는 "미국 대선의 출발점이 아이오와야. 미국 민주 공화 양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시작을 대선이 있는 해 연초에 아이오와에서 시작하는 거야." (한국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아이오와 코커스' 얘깁니다.) 여기까지 말이 나오고 나면 '농담'에 부담감이 좀 있는 친구가 옆에서 덧붙여요. "그 두 개가 전부야!"
 
아이오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말은 "My room has no view."이다. 작가들은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이라는 곳에 머문다. 호텔 인근에 아름다운 아이오와강이 흐르고 햇빛이 가득하지만 방은 어둠에 잠겨 있다. 창을 여니 강은커녕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카운터로 내려가 혹시 방을 바꿔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모든 작가들의 방이 벽을 향해 있단다. 작가들에게 어두운 방을 배정하라는 상부의 지령이 있었나? 그게 아이오와 IWP의 은밀한 목적인 걸까? 빛이 없는 곳에서 어떤 글이 탄생하는지 실험하는… 여기 일종의 글쓰기 감옥?

그런데 프런트 직원의 말과 달리 꽤 많은 작가가 강이 보이는 환한 방을 배정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봉기(?)가 일어났는데, 어둡고 추운 방을 배정받은 작가들이 그룹 채팅방에서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들은 각자의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을 공유했는데 하나같이 처참했다. '내 뷰가 최악이다' 배틀을 시작. 벽 뷰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최악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로운 포인트다.

시작은 야스히로였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종이컵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벽으로 둘러싸인 광장에는 낡은 종이컵이 버려져 있었고, 그것은 조금씩 뒤척이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음 페이지 사진 참고)

"혹시 날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종이컵을 관찰하는 사람 있어? 고백하건대, 난 이제 이 작자에게 감정적으로 의존까지 하고 있어. 약간의 동정심까지 곁들어… (Has anyone been observing the daily movement of this paper cup? I have to confess that I am developing an emotional attachment to this fellow. A sympathy as well…)"

저는 대학 때 아이오와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지냈습니다.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어요. 제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아이오와였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쩌면 아이오와였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요.

그나마 아이오와에 대한 농담거리를 찾아냈던 공항 직원은 좀 낫습니다. 뉴욕에서 사람들이랑 얘길 하다가 "나 아이오와에 있었어." 그러면 "어....." 그러고 대화가 이어지질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화젯거리를 찾지 못해 대화가 흩어져서 제가 먼저 '나이스하게' 대화를 전환시켜 줘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다른 어디도 아니고 바로 그런 동네, 아이오와에서 보냈던 1년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고 말입니다.
 
알고 보니 벽 뷰를 배정받은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종이컵을 볼 수 있었다. 전망 없는 작가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나이지라에서 온 작가 수네스트가 말했다. "아마 그것은 연옥으로 가는 순례자일 수도…" 그러자 또 다른 전망 없는 작가 존 스캇이 말했다. "자신에게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갇힌 영혼." 전망 없는 작가 오릿이 말했다. "누군가는 그 공허함을 지켜야 한다. 누군가는 산소를 운반해야 한다. 당신은 컵에 이름을 주지 않는다. 컵이 당신에게 이름을 줄 것이다…" 전망 있는 작가 에바는 말했다. (에바의 방은 강 뷰다. 혹자는 그녀가 종이컵 담론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종이컵은 자신에게 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종이컵은 플라스틱, 도자기 또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짧은 수명을 누리며, 그 유한한 삶 동안 인간과의 접촉은 대부분 한 번의 키스에 제한됩니다. 운이 좋으면 두 번 닿을 수도 있겠지요. 종이컵은 많은 주목을 받을 운명이 아니며, 자신이 이런 공감의 대상이 될 것을 몰랐습니다. 종이컵은 시인, 소설가, 기자, 학자 등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상상력을 종이컵의 작은 빈 공간에 옮겨놓고 있으며 아이오와의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작가들은 저마다 컵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 채팅방에 올렸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시면 이 종이컵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기자 주)

아이오와 일기의 제목으로 이 책이 선택한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은 제가 아는 그 아이오와에 딱 걸맞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농담의 대상이 되곤 하는 아이오와이지만, 실제론 많은 한국 문인들이 아이오와를 다녀갔습니다. 최승자 시인도 이미 90년대에 바로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아이오와 체류기 [어떤 나무들은]을 남겼습니다.

아이오와는 미국 중서부 출신의 어떤 '백인 미국인'들에게는 어떤 억압의 이미지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이오와에서 만났던 여러 친구들에게 그들의 고향인 아이오와는 자신이 속한 답답한 규범의 상징이었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저와 친해지고 나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라며 자신은 대학에 올 때까지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오와만큼 그야말로 앵글로 색슨 계열 백인이 주를 이루는 지역은 미국 안에서도 드뭅니다. 미국 청교도 후예들의 핵심 같은 중부 지역 중에 하나라는 것, 다양성이 제한돼 있다는 것, 엄마아빠가 모두 보수적이라는 것. 제가 교환학생으로서 속했던 대학이란 환경에서는 그런 것들이 많은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랬기 때문에, 언뜻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나는 누가 봐도 이방인이기 때문에, 저는 제 삶에 있어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신선한 심호흡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기에서 스스로를 '아이오와 광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곳에서의 삶에 빠졌었다는 문보영 시인도 바로 그런 호흡을 아이오와에서 시작했습니다.

문보영 시인은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첫머리에 인용했던 바로 그 질문.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은가요?" 아이오와에서 만났던 제 친구들은 아이오와만은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문보영 시인이 그렇게 떠나온 건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상황과 특이성들을 한데 묶어서 얘기하는 건 조금은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어디서 왔든, 적어도,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 사람이세요?
그때, 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파티에 참여한 학부생이었다.
-네?
나는 코토미와 시선을 공유했다. 코토미도 동양인인데, 그가 나를 콕 집어서 물었으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보면 알아요. 저도 예전에 한국에서 살았어요.
-한국인이세요?
-아뇨. 한국에서 공부했어요.
-언제요?
-3년 전에요.
-오… 어디에서요?
-수원이요!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그가 의자를 가져와 가까이 앉았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한국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헬조선!
쏟아지는 영어 문장에 박힌 그 세 글자가 내 귀에 꽂혔다. 그는 한국어가 서툴렀는데, 헬조선의 발음은 정확했다. 아이오와까지 와서 헬조선을 만날 줄이야. 나는 어떤 반응을 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쩌다 한국에 공부하러 갔냐고 화제를 돌렸다.
-한국은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출산율 꼴찌. 미래가 없다던데. 그래서 외국인들이 공부하러 가기 좋아요.
대화는 9시 뉴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과목 공부했는데요?
-컴퓨터요. 아, 그리고 전 절대로 한국에서는 안 태어나고 싶어요. 집값은 비싸고, 좋은 학교를 나와도 취업은 안 되고, 아, 그리고 지옥철!
지옥철은 그가 두 번째로 정확히 발음한 한국어였다. 그러더니 그는 깔깔 웃었다. 아마 그는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인지 그 자리가 불편했고, 영어에 씨앗처럼 박힌 두 단어, 헬조선과 지옥철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와 그뿐이라는 사실이 조금 징그럽게 느껴졌다. 내가 반응하지 않자, 그는 나더러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며,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데 내 영어는 좋은 편이란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악의는 없었다.
-그런데 저는 다시 태어나도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나는 말했다. 이 일기를 쓰면서도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오 ㅆ…
-헐, Why?
그가 물었다.

아이오와에는 정말 삶의 반대편 같은 들판들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이 바깥의 삶이 있을까, 심연에 가까운 콩밭들. 옥수수밭들. [무빙]의 류승범이 아이오와로 입양(돼 이용당한) 아이였던 건 그 삶이 그만큼 스산하고 외롭고 막막한 것이었다는 의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웬만한 지역은 우리 집 불을 아무리 다 끄고 암막커튼을 쳐도,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불을 꺼도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하지만 아이오와에서 캠핑을 가서 숲속에 텐트를 치고 불을 끄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절대 암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에서 삶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듯이 걸었던 들판을 아는 저로서는 문 시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바로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오와에 가보신 적이 없는 분이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삶의 들판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씩씩거리는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온 코토미가 눈치를 살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금 저 자식이 나를 애국인으로 만들었어!(He made me a patriot!)
-애국인이 뭐야?(What is a patriot?)
코토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래서 번역기에 영어로 애국인을 쓰고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여주었다.
-응? 번역기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거 맞아?
코토미가 의아해하며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일본어로 애벌레라는 뜻인데.
애국자가 왜 애벌레라고 번역된 건지는 몰라도, 덕분에 웃음이 터졌다. 코토미는 나를 잘 안다. 누군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다운타운에 있는 한식당에 가자고 말하면, 코토미가 대신 답한다.
-얘 한식 잘 안 먹어.
코토미는 내가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은가요?' 이것이 내가 아이오와에서 품고 지내는 주제니까. 그런 내가 갑자가 한국을 변호하고 있으니 얼마나 웃겼을까?

문보영 시인은 아이오와에 머무름으로써, 영어로 자신의 문학을 소통하고 돌아봄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시를 쓰는 한국어의 '반대편'들을 요리조리 훑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국을, 모국어를 떠났더니, 당연했던 많은 개념들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문 시인은 아이오와에서 이른바 '엑소포닉'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 온몸에 스며든 모국어를 스스로 떨치고 '망명하는 문학',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일부러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문학에 눈을 뜬 겁니다. 그렇게 해서 문보영 시인이 다다르는 지점은 '이놈의 한국, 안녕!'은 아닙니다. 다만 '그래, 나는 떠날 수 있겠구나. 그래, 나는 모국어로부터 망명할 수도 있겠구나.' 태동하기 시작하는 어떤 인식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득 고향이, 한국이, 이곳이 어쩌면 '내가 사는 곳이어서 사랑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자각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하고 싶었던 주제, 쓰기와 읽기의 불완전함입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제 나라에 관해 얘기해야 할 것 같군요. 한국에 대해 말하자면… 음, 제 필리핀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반드시 케이팝에 관해 말하라고요. 그게 제가 미국에 파견된 진짜 이유라고… 네, 한국은 케이팝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시인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만큼 시를 많이 쓰고 많이 읽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게 참 신기하지요. 매달 수많은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시를 사랑합니다(고 믿고 싶네요). 나는 언젠가 한국을 떠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 시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은가요?' 란 질문으로 아이오와 체류를 시작했습니다. 그 석 달의 시간을 지나왔을 때, 그 질문이 어떻게 성장하고 가지와 싹을 이리저리 더 틔워서 어디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는지... 이 책을 열어서 함께 확인해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그 마음. 책과 글의 세계로 점프하고 싶다, 지금 이 시간, 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다는 마음을 아는 분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고 위로해 주듯 함께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북적북적]에서 문보영 시인과 함께 이 주말 아이오와의 들판을 천천히 걸어보시는 것 어떨까요.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겨레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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