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는 빈 카트를 내려다보며 앞날을 그렸다. 발음하기 어려운 테트로도톡신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 일하느니 화를 뿜어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안전할지 모르지. 위험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설희는 복어 독으로 사망에 이른 사고들을 곱씹으며 더 이상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휘둘려 누명을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잠깐 자신을 구석으로 몬 사람들에게 테트로도톡신을 먹인다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 빠졌다."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은 다분히 1950~1960년대 영국의 싱크대 사실주의를 의식했다. 지난해 동인 참여를 제안하면서 작가분들께 미리 말씀드린 문제의식과 규칙은 있다. 문제의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규칙은 이러했다.
1.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비정규직 근무, 자영업 운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은 물론, 가사, 구직, 학습도 우리 시대의 노동이다.
2. 당대 현장을 다룬다. 수십 년 전이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쓴다. 발표 시점에서 오 년 이내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3.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
"성의와 의리와 잔정의 크기가 모두 돈으로 환산 가능한 시절이 아닌가. 물론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을 터였으나 슬프게도 혜심에겐 그런 관계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고 사막의 밤 같은 외로움이 몰려올 때면 혜심은 기를 써서 그 감정을 떨치고 막아냈다. 외로움만큼은 돈으로 메워지지 않는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 손원평 <피아노>에서
"사람을 거래하는 거라면… 모델 사진에 집중한 그들을 지켜보던 설희는 불현듯 떠오르는 시나리오에 머리가 뜨거워졌다. 또다시 범죄에 연루되어 하지 않은 잘못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몇 달 전처럼 경찰서에서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 호출할까. 모든 걸 몰랐다고 부정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또 구석에 몰렸다는 생각에 설희는 혼란스러워 가슴이 답답했다." - 이정연 <등대>에서
"진영은 그동안 숱한 사람을 만나오며 그들이 좋아할 만한 말과 돌아오는 반응을 축적해 왔다. 그리고 어떤 말은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반복해 온 말과 표현과는 상반되는 순간들을 마주칠 때가 더러 있었다. 가족 말이 맞아요. 가족 말씀 들으세요, 같은 말들이 엮어서 구획하고 포괄하는 영역의 먼 바깥. 저도 그랬어요,라고 공감할 수도 없는 그냥 선영의 삶." - 임현석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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