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⑥] '끊임없이 의심하고 바보처럼 보여라' (글 : 양선희 소설가)

#1
은나라 주왕이 밤이면 술자리를 벌이며 환락에 젖어 날짜까지 잊을 정도였다. 그가 측근에게 물었으나 모두 알지 못했다.
이에 사람을 시켜 기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기자는 종에게 이렇게 일렀다.
"천하의 주인과 그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두 날짜를 잊었다면 천하가 위험해질 것이다. 온 나라 사람이 날짜를 모르는데 나 홀로 안다고 하면 내가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취해서 알지 못하노라고 해명했다.
#2
제나라 대부 습사미가 전성자를 만났다. 전성자는 훗날 제나라 간공을 살해하고 나라 실권을 틀어쥔 인물이다.
습사미는 전성자와 함께 대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삼면이 시원하게 트였는데, 남쪽을 보니 바로 자기 집 나무가 시야를 가렸다.
전성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광경이 마음에 걸렸던 습사미는 집으로 돌아와 사람을 시켜 그 나무를 베라고 했다. 도끼로 여러 개의 상처가 났을 때, 그는 멈추게 했다. 집안 관리인이 "왜 그리 수시로 변하느냐"고 물었다. 습사미가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이런 게 있다. '연못 속 물고기를 아는 자는 상서롭지 못하다.' 저 전성자는 앞으로 큰일을 낼 것인데 내가 그의 기미를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면 필시 나는 위험해질 것이다.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고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다면 그 죄는 크다."
그래서 나무를 베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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