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③] "다들 왜 나의 내면을 몰라줄까요" (글: 양선희 소설가)
#1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가 흰옷을 입고 외출했다. 비가 내리자 흰옷을 벗고, 검정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왔더니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댔다.
양포는 화가 나서 때리려고 했는데 양주가 말했다.
"때리지 말게. 자네라도 그러했을 것이야. 자네 개가 흰색으로 나갔다가 검정색으로 돌아오면 자네도 어찌 괴이쩍다 생각하지 않겠는가?"
#2
양자(楊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동쪽에 있는 숙소로 갔다. 여기엔 두 명의 하녀가 있었는데 못생긴 여자가 직위가 높았고, 예쁜 여자가 낮았다. 양자가 연유를 물었더니 숙소의 주인 남자가 대답했다.
"예쁜 아이는 스스로 예쁘다고 하는데 저는 예쁜지 잘 모르겠습니다. 못생긴 아이는 스스로 못생겼다 하는데 저는 못생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양자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과 마음이 참으로 현명하다. 현명하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 현명하다며 우쭐한 마음을 버린다면 어딜 간들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3
제나라 전성자가 연나라로 달아났을 때의 이야기다.
그의 통관에 필요한 부절을 짊어지고 따랐던 시종 치이자피는 국경 지역 망읍에 도착하자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은 저 고택의 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연못이 말라 뱀이 이주하려 하였답니다. 작은 뱀이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대가 앞서고 내가 뒤따르면 사람들은 뱀이 지나가는구나하며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입을 물고 그대가 나를 짊어지고 간다면 사람들은 나를 신군(神君)이라 여길 것일세.' 이에 서로 입으로 물고 큰 뱀이 작은 뱀을 등에 업고 큰길을 건넜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를 피하며 '신군이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제안했다.
"지금 어르신은 외모가 출중하고 저는 추합니다. 이제 어르신을 저의 중요한 손님인 듯 위장해 모시고 다니면 사람들은 저를 작은 나라의 군주 정도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르신이 제 시종이 된다면 저는 아주 큰 나라의 귀족 정도로 보일 것입니다. 어르신께서 제 시종으로 위장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전성자는 차이자피가 짊어지고 있던 전을 받아 짊어지고 그를 수행하여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숙소의 주인은 크게 공경하여 대접하면서 술과 고기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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