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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여성 해방인가 성적 대상화인가…문제적 영화 '가여운 것들'

입력 : 2024.03.22 09:01|수정 : 2024.03.29 17:28

[주즐레] 불편한데 통쾌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우화


김지혜 주즐레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벨라(Bella)와 갓윈(Godwin). '가여운 것들'(Poor things)에서 유사 부녀 관계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이름에서 이야기를 만든 이의 의도가 읽힌다.

벨라는 이탈리아어로는 '아름답다'는 뜻이고, 라틴어로는 '전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1879) 주인공 노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형의 집'은 페미니즘 희곡의 시초이고, 노라는 그 요체다. 저명한 의사이자 벨라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갓윈은 창조주인 신(GOD)과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Darwin)의 합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두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가여운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 영화일지를 유추해 볼 수 있고, 극장을 나설 때쯤이면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콘셉트가 절묘하게 조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난 11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4관왕(여우주연상, 미술상, 분장상, 의상상)에 올랐다. 작품상과 감독상은 '오펜하이머'에게 뺏겼지만 여주인공의 연기와 미장센 부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작품은 올해 가장 빼어난 영화 중 한 편이다.

김지혜 주즐레
천재 과학자이자 의사인 갓윈(윌렘 데포)은 벨라(엠마 스톤)라는 젊은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 벨라는 아름답지만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유아 수준의 언어 능력 등 일반적인 성인 여성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또한 그녀는 세상과도 단절된 채 집 안에서만 생활한다. 벨라는 갓윈의 딸이라기보다는 소유물처럼 보인다.

갓윈 박사의 제자 맥스(레미 유세프)는 스승의 부탁을 받고 벨라의 행태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다. 한집에 살면서 벨라를 관찰하던 맥스는 벨라의 '이상한 매력'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를 눈치챈 갓윈은 맥스와 벨라를 결혼시키려고 하고 자신만의 룰이 적힌 '약혼 서약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이 문서를 공증하기 위해 갓윈의 집을 찾아온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은 벨라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벨라 역시 던컨에게 빠져든다. 던컨은 벨라에게 바깥세상을 알려주겠다고 꼬시고, 벨라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1992)을 원작으로 한 '가여운 것들'은 원작의 토대 위에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각본가 토니 맥나마라의 개성을 투영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페미니즘 영화라는 호평을 받은 동시에 남성적 시선(Male gaze)으로 가득한 반페미니즘 영화라고 공격받고 있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에서 왜 이토록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 것일까.

김지혜 주즐레

'인형의 집'을 나선 벨라…색(色)을 입다

동명의 원작은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에서 피조물은 흉측한 외모의 남성이었으나 '가여운 것들'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또한 원작이 맥캔들리스(영화에선 맥스)의 시선으로 벨라를 묘사한 것과 달리 영화는 벨라의 시선으로 세상 보기를 시도한다. 또한 벨라의 자아 형성 과정이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갓윈은 임신한 채로 템즈강에 투신한 여성을 건져내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시켰다. 태아의 뇌를 엄마의 머리에 이식시켜, 몸은 어른이나 머리는 유아인 혼종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 경악스러운 실험이 윤리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자. 영화는 이 괴상한 실험이 빚어낸 혼돈과 파국을 상상 이상으로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김지혜 주즐레
영화 초반, 벨라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유아기의 어린아이임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보통의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체와 정신의 성장이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벨라는 육체와 정신은 엇박자를 낸다. 하드웨어는 성인인데 소프트웨어는 유아 수준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예의, 일반적인 상식 등은 탑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육체는 이미 성장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뿜어내고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장면은 벨라가 식탁 위의 사과를 '그곳'에 갖다 대는 장면이다. 사춘기 소년이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복숭아'를 사용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것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가여운 것들'의 '과일 체험'은 꽤나 서정적으로 묘사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와는 달리 과격함이 두드러진다. 엄마의 젖가슴을 탐닉하는 프로이트의 유아성욕론에 의거하면 유아기를 관통하고 있는 벨라의 행동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김지혜 주즐레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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