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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극장에서 해부를? '공개 해부'를 공연으로 재탄생시키다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3.03 09:01|수정 : 2024.03.03 09:01

[커튼콜+] 이번 주 볼만한 공연은? 볼로냐 해부학 극장의 공개 해부 (글 : 황정원 작가)


한 번은 영국 병원에서 "자, 이제 수술장(Operating Theatre)으로 들어가세요."라는 안내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사전의 1번 의미로 단어를 해석하는 외국인답게 'Theatre'라는 단어를 듣고 무대 위에 누운 나와 내 수술을 관람하는 관객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극장 Theatre은 그리스어 '보다 Thea'에서 유래되어 '보는 곳 Theatron'이라는 뜻을 지닌다. 어원을 생각하면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 이목이 집중되는 장소"에 극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컨대 수술장 외에 전투가 벌어지는 전역(戰域)을 기술할 때에도 Theatre라는 단어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극장의 의미가 잘 드러나는 또 한 곳이 이탈리아 볼로냐의 옛 대학 건물에 있다.
 

오페라 극장 같은 볼로냐 해부학 극장

볼로냐 대학은 무려 1088년에 설립되었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니 '학문의 모체(母體)'라는 교호에 밴 자부심이 지나치지 않다. 이 볼로냐 대학이 본관으로 사용하던 아르키진나시오 궁전에 해부학 극장(Teatro Anatomico dell'Archiginnasio)이란 독특한 공간이 있다.

해부학 극장은 이름 그대로 해부를 선보이는 장소이다. 흰 대리석 해부 테이블을 중심으로 계단식 객석이 둘러싸고 있어 원형 극장의 모습을 띤다. 여기에 더해 천정에는 의학의 신 아폴론이 조각되어 있고, 극장의 사면에는 히포클라테스, 갈레노스 등 서양의학 선구자들의 조각상이 둘러서 극장을 내려다본다. 강의실 정면의 조각상이 다시 한번 방의 정체를 주지 시키는데 날개 달린 천사가 해부학을 상징하는 여인에게 꽃 대신 넓적다리뼈(non un fiore, ma un femore)를 부여한다. 기능과 위생에 치중한 차가운 현대 수술실에 비하면 차라리 오페라 극장에 가까운 모양새다.

볼로냐 해부학 극장의 내부 / 출처 : flickr ⓒPaul Baker

볼로냐의 자유 속에서 싹튼 학문, 해부학

볼로냐에 1000년에 이르는 역사의 대학교가 설립되고, 그 대학이 화려한 해부학 극장을 건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볼로냐는 유럽 최초의 자유 도시였다. 12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왕이나 교황에게 지배받지 않는 자치국가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꾸린 공화정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해 왔다.

이런 자유로운 풍토를 쫓아 일찌감치 유럽 전역에서 지식인들이 몰려들었고, 중세 교회가 금지했던 인간 신체 해부가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해부를 통해 인간 신체의 구조와 형태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기능에 연결하는 학문, 즉 근대 의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이 그렇게 볼로냐에서 시작한 것이다. 해부학은 교회의 금지 조치가 풀리며 한층 번창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금 의학이 발전했다. 이제 질병과 의학은 신의 뜻에서 벗어나 과학의 사유 아래 재편성되었다.

해부학 발전의 성과는 의학 분야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라파엘로 등 쟁쟁한 예술가들이 뼈의 형태와 근육의 움직임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직접 메스를 들었고, 이런 문화 속에 르네상스 회화의 전성기가 탄생하며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같은 거장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10년 경에 스케치한 인간의 어깨 구조. 다빈치는 평생 30 여 구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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