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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일요일이면 변신하는 그곳,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심영구 기자

입력 : 2024.02.18 09:03|수정 : 2024.02.18 10:32

[커튼콜+] 오페라 극장이 하려고 들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다 (글 : 황정원 작가)


놀이터로 탈바꿈하는 오페라 극장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한 달에 한 번, 자신들이 보유한 세계 최고의 전문인력과 막대한 인프라를 오페라나 발레 제작이 아닌 곳에 쏟아붓는다. 바로 〈패밀리 선데이〉다. 〈패밀리 선데이〉가 열리는 일요일이면 오페라 하우스는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건물 전체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가득 찬다. 매 층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두 시간 반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처음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한 아이들은 으레 건물의 화려함에 탄성을 내지른다. 정교한 금빛 장식물과 붉은 융단으로 뒤덮인 극장을 한눈에 담으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두리번 거린다. 그러다가도 이내 입맛에 맞는 활동을 찾아 거리낌 없이 극장 안을 돌아다닌다. 15분에서 30분 정도로 짤막하게 구성된 다양한 액티비티에 참여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어슬렁어슬렁 다니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 그냥 끼어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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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원래 무대 위나 백스테이지, 연습실에 놓여 있을 소품과 세트들이 극장 여기저기 놓인다. 공연 때면 와인잔을 손에 든 관객들로 붐비는 넓은 바 공간에는 댄스 플로어가 깔리고, 지하 로비에는 로열 발레단 연습실에서 가져온 댄스 바가 일렬로 놓인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발레단 출신의 무용수들에게 안무를 배우고 로열 발레 학교 재학생들의 공개 리허설을 구경하기도 한다. 극장 소속 오페라 가수의 진두지휘 아래 목청껏 노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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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쪽에는 실제 공연에 쓰이던 오페라, 발레 의상과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날만큼은 누구나 그 안의 모든 의상을 마음껏 입어 볼 수 있어, 아이들은 화려한 튜튜를 입고 포즈를 잡기도 하고 늑대 가면을 뒤집어쓰고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무대 위 격투 장면을 연출하는 전문가에게 진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를 배우는 시간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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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한 재킷을 갖춰 입은 페이스 페인팅 전문가들이 일렬로 앉아 있는 방도 있다. 그들은 방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공연 속 캐릭터들의 사진을 내밀며 원하는 캐릭터를 묻고, 대답에 따라 맞춤 분장을 해준다. 직접 손 쓰는 일을 좋아한다면 만들기 코너에서 악기, 꼭두각시 인형, 극장 스태프들이 착용하는 헤드셋 등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어 본다.

탄탄한 인프라와 전문 인력에 더해 수십, 수백 년의 공연 제작으로 갈고닦은 상상력과 노하우가 합쳐지니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액티비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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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노는데 여념이 없지만, 사실 그 놀이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 주제에 부합하도록 세심하게 기획되어 있다. 주제는 그 달 메인 무대에서 선보이는 공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발레 〈호두까기〉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이 무대에 올라가는 12월 〈패밀리 선데이〉에서 배운 춤은 〈호두까기〉 속 실제 안무고, 그들이 부른 노래는 〈헨젤과 그레텔〉 속 아리아다. 신나서 만든 진저 브래드 맨 쿠키와 커다란 마녀의 집은 오페라 3막의 무대 배경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액티버티들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고, 그 안의 캐릭터들 만나며 그들을 춤과 노래로, 분장과 의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부지불식간에 배운다. 나중에 우연히 〈패밀리 선데이〉에서 다룬 오페라를 보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신이 나 소리친다.

"어?! 나 저거 아는 노랜데?"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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