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질문도 이제는 답이 너무 뻔하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산다. 아니, 사실 음식이 우리를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먹는' 존재다."
'읽는 존재'와 '먹는 존재'가 만날 때.
어릴 적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에 매혹되고 한밤중, 하루키의 <빵가게 습격>을 읽다가 냉장고를 털고, <채식주의자> 때문에 육식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던 당신을 위한 소설 속 음식 이야기.
"어떤 궁금증은 해결하는 데 아주 긴 세월이 걸린다. 이삼십 년이라면 충분히 긴 세월이 아닐까? <작은 아씨들>의 '절인 라임' 이야기다. 네 자매의 막내 에이미가 학교에서 몰래 먹다가 꾸지람을 들었던 바로 그 라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86년에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처음 접하고 궁금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어쨌든 궁금했다. 아이들은 무슨 맛으로 이걸 학교에서 먹는 걸까? 왜 먹었다고 혼이 나는 걸까? 1980년대에 제대로 실체를 접한 적도 없는 레몬이 이미 미국에서는 1860년대에 절임으로 절찬리에 유행이었다는 점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작은 아씨들>과 절인 레몬의 진실'에서
"그렇지, 남부라면 비스킷이지. 햄, 그리츠, 달걀에 비스킷이지. 주인공인 셀리가 비스킷 이야기를 꺼내자 옛 추억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폭신한 딥 사우스 비스킷의 추억이다. 그렇게 소설에 빠져들려는데 다음 쪽에서 갑자기 격변이 일어난다. 갑자기 멀쩡하던 비스킷이 스콘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뭐라고? 충격에 몰입이 확 깨져 버린다. 스콘이라니? 스콘이라니!"
-'<컬러 퍼플>과 비스킷, 그리고 소울 푸드'에서
"왜 이 오이는 이다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맥락 덕분인 것 같다. 정말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아픈 이와 수분을 한껏 머금은 아삭한 오이가 빚어내는 생기의 대조가 극적으로 느껴진다. 한쪽은 시들어 가는 생명, 다른 한쪽은 물이 오른 생명이다. 그래서 후자를 전자에게 먹이면 병이 단숨에 나아 벌떡 일어날 것 같다는 기이한 희망마저 품게 만든다....
하루키와 음식 세계의 팬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오이가 조금 과장을 보태 하루키가 음식과 요리에 통달했다는 방증이라 여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하찮게 보일 법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손길로 음식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일상에서든 소설에서든 쉬운 일이 아니다."
-'오이 먹는 이야기, 혹은 10개의 키워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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