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사회

[뉴블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재심 결정…이유는?

전연남 기자

입력 : 2024.01.05 16:32|수정 : 2024.01.05 22:27

동영상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순천에서 한동네에 살던 주민 4명이,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가 2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막걸리에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던 걸로 조사됐는데, 검찰은 막걸리를 마시고 숨진 여성 중 1명인 최 씨의 남편과 딸이 막걸리에 일부러 청산가리를 탄 걸로 봤습니다.

지난 2009년 7월 6일, 조용하던 전남 순천의 한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동네 주민 4명이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가 당시 50대였던 최 모 씨 등 2명이 숨지고, 다른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목격자 (SBS 뉴스, 지난 2009년 7월 6일) : 희망근로 일 나오신 분들인데요. 119 왔을 때 나도 실어줬지만, 막걸리 먹고 쓰러졌다고, 막걸리에 다른 걸 탄 것 같다고….]

막걸리에서는 청산가리가 검출됐는데, 검찰은 숨진 최 씨의 남편인 백 씨와 그의 막내딸이 일부러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탄 걸로 봤습니다.

백 씨 부녀가 15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 씨를 살해했다고 본 겁니다.

국민적 충격을 줬던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2009년 9월 26일 방송) : 자, 한번 섞는 장면을 재현해 봐 그때 네가 봐서 청산가리가 양이 이 정도 되냐? 아빠 말이 이 정도 됐다고 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 (2009년 9월 26일 방송) : (여기 놔뒀어요?) 여기 놓으면서 졸라맸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백 씨 부녀에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중요한 진술이 일치한다며 남편과 딸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지난 2012년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어제(4일), 백 씨 부녀는 약 1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이들이 억울하다면서 재심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형집행 정지로 석방한 겁니다.

이 사건에서 유일한 증거는 '부녀의 자백'이었습니다.

핵심 물증인 청산가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부녀를 상대로 강압적으로 수사해 허위 자백을 받은 거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법원이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 부녀는 1심 재판에서부터 진술을 번복하고,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표현해 왔습니다.

[검찰 조사 당시 영상 (지난 2009년 9월) : (백○○ 씨, 고개 들어봐요. 아이! 이 양반, 오늘 조사 전까지는 본인이 거짓말했다는 건 인정해 줄게. 근데 오늘 조사에서 왜 왔다갔다해요? 본인 말 한마디면 다 끝날 거 같아요? 말이 잘못 나왔죠?) 네. (똑바로 앉아봐, 똑바로. 말이라고 막 나오는 게 아니고 좀 생각을 해서 해봐 생각을, 백○○ 씨. 생각을 좀 해보세요.) 네.]

[검찰 조사 당시 영상 (지난 2009년 9월) : (너 거짓말 탐지기까지 했구나, 너 통과했지?) 네. (하 참, 어떻게 그런 비법이 있어? 한번 써먹게. 알려주더냐? 아빠가 그렇게 거짓말 통과하는 방법.)]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증거로 제출한 검찰의 당시 조사 영상입니다.

박 변호사는 이를 토대로, "문맹인 아버지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딸을 상대로, 강압적인 짜 맞추기식 수사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준영/변호사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출연, 지난해 7월 6일) : 자백이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백이 조서에 담겨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조서에 근거가 된 실제 진술이 담긴 영상 녹화를 보면, 조서가 사실상 왜곡돼 있고 조작이란 표현도 어울릴 정도로 상당히 하지도 않은 진술이 들어가 있거나 문답이 바뀌거나 여러 가지 형태의 어떤 조작이 있었습니다.]

또 백 씨가 범행 전 막걸리를 사 왔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검사가 '경찰 CCTV 운영의 기술적인 문제로 자료가 없다'고 거짓말한 점 등, 백 씨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경찰이 이를 재판부에 내지 않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박준영/변호사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출연, 지난해 7월 6일) : 막걸리를 사려면 순천 시내로 가야 하거든요. CCTV도 다 확인했었습니다. 거기에 의심할 만한 내용은 한번도,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검찰 측은 이런 주장들에 대해 "일부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증거가 제출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면서도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재심 청구 기각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어제(4일) "검사가 위법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다" 고 봤고, 백 씨 부녀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또 이들의 재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형 집행정지를 결정했습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