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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 가족의 삶

김민정 기자

입력 : 2023.11.16 11:01|수정 : 2023.11.16 11:01

[더 스피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저자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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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출신의 대학교수 의사 부부, '강남 8학군' 출신의 자녀. 남들이 보기엔 흠 하나 없이 그저 완벽해 보이는 삶이었을 겁니다. 자식의 성취는 내세우고, 흠결은 감추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엄마 스스로 깨트리고 자녀의 양극성 인격장애 투병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는 분명 용기 이상의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정신과 병동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다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화제작이 되는 사회. 동시에,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으로 가해자의 정신병력이 지목되고 전시되는 사회, "임대주택에 못 사는 사람이 많아서 정신질환자들이 나온다"는 여당 정치인이 버젓이 주요 당직을 차지하는 사회.

착하고 순수한 정신질환자와 정신 이상 흉악범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깊고 큰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환자의 가족이자 한 명의 의사로서 바라 본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에 대한 성찰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의 저자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를 만나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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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고 말을 건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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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마음으로 책을 낼 결심을 하셨나요?

"책으로 낼지 사실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신 질환에 대한 어마어마한 그 편견, 그리고 정신질환 환자들이 계속 사지로 내몰린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꼭 내가 되어야 하냐는 고민은 했지만... 그래 내가 하는 게 어떻겠냐, 하고 생각했지요. 이 문제가 저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힐링의 효과도 있었고요."

- 당사자인 둘째 딸은 자신의 정신 질환이 공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딸이 양극성 질환 판정 5년째 됐을 때쯤 정신질환에 의한 장애 신청을 하려다 거부된 일이 있었거든요. 이때 정신 질환자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고 딸이 무척 고발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책을 한 번 내보겠다는 엄마의 얘기에 동의하더라고요. 다만 책이 나오기 전에 너무 개인사적인 이야기들은 딸의 검수를 거쳐 많이 빼기도 했어요."

시종 초연한 자세로 담담하게 딸의 투병 사실을 말하는 그도 처음엔 딸이 아프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세 차례 부인한 베드로처럼, 김 교수도 딸이 아프다는 여러 증거를 마주칠 때마다 "아냐, 우리 딸은 아니야"라고 수 차례 부인했다고 했습니다. 정신질환은 우리 가족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아이의 자해를 보고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 양극성 장애는 어떤 질병인가요?

"조현병과 함께 중증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병입니다. 조증(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뜨는 현상)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데 조증이 아주 심한 경우에는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져 버리는 거거든요. 저희 아이는 우울증이 심한 타입이었어요."

- 그래서 자해의 위험이 높았던 것이군요.

"네. 그래서 병이 상당히 심해서 입원을 여러 번 할 정도였을 때도 누구한테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해하려는 마음이 컸던 게 문제였어요."

- 딸이 처음 발병해 양극성 정신질환을 앓았던 기간은 가족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거의 10년이에요. 진단받은 지는 7년이 됐고요. 그동안 정신병동에 16번 입원했습니다. 그 기간은... 망망대해에서 폭풍우가 치는데 배에는 큰 구멍이 났고, 남편은 조타를 하고 저는 선실에서 물을 푸고 그러면서 우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서로 우스갯소리를 했죠. 그래도 딸이 비교적 순한 환자의 경과를 보여서 다행이었어요."
 

각자도생 경쟁 사회…약자에게 '누칼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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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의지가 강했던 딸 덕에 인터뷰 내내 "그래도 우리 가족은 운이 좋았다"고 한 김 교수의 책에는 그러나, 자해와의 결전에서 번번이 패해 만신창이가 된 딸을 그때마다 입원병동(옛 폐쇄병동)에 데려다 놓고 돌아설 때의 좌절감이 절절히 드러나 있습니다.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데는 유전적 소인이 강하지만, 최근 딸처럼 1020의 정신질환이 급격히 늘어나는 배경에는 과열된 경쟁, 각자도생 사회의 각박한 현실이 분명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 둘째 딸의 발병 요인 중 하나로 '강남 8학군'에서 만난 '프레너미(친구인 것 같은 적이란 뜻)'을 꼽기도 하셨지요. 지금의 경쟁 일변도 사회적 분위기가 10대, 20대 정신질환 발병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예를 들어 볼게요. 기관지가 약해 천식에 걸렸어요. 그런데 인헤일러라는 흡입기만 주고 유해 환경에서 계속 일하라고 하면 증상이 좋아질 리가 없겠죠.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우울, 불안, 공황이 된 것 같아요. 상대방을 말로 난도질하는 사회라고 할까요. 의과대학생 중 우울증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이 시대가 점점 유해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직무 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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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이 갈수록 정신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것은 김 교수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자해·자살로 응급실에 입원한 사람의 숫자는 2012년 5,375명에서 지난해 9,813명으로 늘었는데 특히 10대(615명→1,786명)와 20대(1,041명→2,744명)에서 폭증했습니다.

자해와 자살의 주된 이유로 가족, 친구와의 갈등을 꼽았던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정신과적 문제가 꼽힌 것(44.1%)도 두드러지는 변화입니다. 한국의 20대 여성들에게서 자살의 코호트 효과가 두드러지게 관찰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 젊은 층의 정신 건강이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젊은 층을 더 사지로 내몬다고 보시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사회예요.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가 '사회라는 것은 없고, 너와 나, 개인이 있을 뿐(1987년, 'Women's Own magazine')'이라고, 고로 개인의 삶은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신자유주의라는 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서구사회에서는 파산 선고를 받았는데,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더 팽배해진 것 같아요. 사회가 완전히 분쇄되어, 죽을 때까지 경쟁하고 각자도생 하는... 곁이라는 게 없는 사회로 느껴지거든요. 젊은이들이 바로 그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저출생의 이유 역시 멀리서 찾을 게 아닌 것 같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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