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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가 찾아가야 할 균형점은 어디쯤일까

심영구 기자

입력 : 2023.10.09 11:00|수정 : 2023.10.09 11:00

[뉴스페퍼민트]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스프 뉴스페퍼민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며칠 전 MIT 경제학과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의 대중 강연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과학자 중 한 명이자, 정치와 경제, 시장과 제도, 기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가장 날카롭게 분석하는 학자로 꼽히는 아세모글루는 최근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도 주로 새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부제가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입니다. 그만큼 방대한 시기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다룬 책이라서 혹시 강연 내용이 너무 복잡하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가장 먼저 왜 지금 이 책을 썼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 시장 제도, 권력 구조 등 우리의 삶 전반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이 점점 자명해지는 상황에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고 거기서 교훈과 통찰을 얻고자 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세모글루 교수가 천착한 문제 가운데는 자동화 등 기술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술과 인간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관련해 비슷한 질문을 받은 아세모글루 교수는 “자동화와 비슷한 관점에서 보자면,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사람의 몫을 빼앗아 가게 두는 대신 인간의 노동을 돕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말이야 물론 좋은데, 과연 현실에서 그렇게 인간과 기계가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새로운 기술이 시장과 사회에 도입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하고 살펴보는 건 좋은데,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인공지능이란 기술은 어쩌면 차원이 다른 기술 변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이번 주에 스브스프리미엄에 소개하기로 한 뉴욕타임스 칼럼을 읽어 보니, 어쩌면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답을 주는, 혹은 최소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건이 최근에 벌어진 것 같습니다. 바로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유수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 방송사, 콘텐츠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대본, 각본, 극본을 쓰는 작가들이 순전히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껴 파업에 나선 건 아닙니다. 모든 파업이 그렇듯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오늘은 우선 이번 파업의 주요 쟁점을 간략히 살펴보고, 리트윈 교수가 칼럼에서 지적한 인공지능에 관해 작가조합과 제작사가 합의한 내용에 관해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미국작가조합의 조합원 11,500명에게는 인공지능의 도래도 문제였지만, 당장 더 심각한 문제는 바뀌어 버린 콘텐츠 시장의 구조였습니다. 예전에는 성공한 TV 드라마를 쓴 작가들은 드라마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추가로 상여금을 받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 드라마가 성공해 새로운 시즌을 제작하면 많은 계약금을 받는 건 물론 드라마가 DVD로 판매되거나 해외 시장에 판권을 팔 때마다 계약서에 정해둔 대로 두둑한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은 전통적인 지상파 TV가 드라마나 쇼를 보는 주요 경로가 아닙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미국에선 넷플릭스나 디즈니, HBO 등이 대표적이고, 기존 케이블 채널들도 자체 콘텐츠 플랫폼을 강화해 맞서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정확한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으며, 작가들은 정해진 금액 외에 추가로 돈을 벌기 어려워졌습니다. 해외 판권 계약에 따른 보너스도 사라지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더 빨리 더 많은 작품을 더 싸게 양산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작가조합은 이런 구조적인 변화가 불러온 문제에 우선 대처해야 했습니다. 인공지능 문제는 물론 중요하긴 했지만, 가장 우선순위는 아니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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