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아내가 약을 먹지 않자 화가 나 폭행해 숨지게 한 70대 남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인 남편이 치매를 앓는 아내를 오랜 기간 보살핀 점, 고령인 데다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조영기)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70대 남편 A 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지난 2021년 4월 12일 오후 9시쯤 경기 동두천에 위치한 자택에서 치매 약을 먹지 않겠다는 아내 B(70대) 씨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B 씨는 사건 발생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후 기억력이 나빠지고 죽은 올케의 이름을 부르는 등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B 씨를 돌보고 있던 A 씨는 사건 당일 B 씨가 약을 먹지 않겠다며 들고 있던 밥주걱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리치자 격분했고 결국 폭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B 씨는 집 밖으로 나갔고 실종 신고 6일 만인 같은 달 18일, 집에서 약 1.6km 떨어진 하천에서 물에 빠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B 씨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두부 손상(급성 경막하출혈 및 뇌지주막하 출혈)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범행 당시 A 씨는 만취 상태였는데 경찰은 실종 신고 당시 "아내를 때렸다"는 A 씨의 진술을 토대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A 씨를 검거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A 씨의 변호인은 B 씨가 하천 위 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검 때 B 씨의 몸에서 검출된 플랑크톤과 물이끼 등 상태를 살펴봤을 때 폭행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또 집을 나서며 찍힌 CCTV 화면 속 B 씨의 얼굴에 멍 자국이 있었고 갈비뼈를 부여잡고 비틀거린 점 등을 봤을 때 A 씨의 폭행이 사망의 원인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에게 실형을 선고하지는 않았습니다.
A 씨가 2년여간 치매를 앓는 아내 B 씨를 돌본 점을 고려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고 본 것입니다.
재판부는 "치매를 앓는 피해자에게 약을 먹이려다 피해자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충동적으로 폭행했는데 고되고 긴 간병 기간 중 우발적으로 범행이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등 오랜 기간 피해자 곁에서 병간호하고 돌본 점, 유족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피고인이 고령이고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