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너 남극 갈 자신이 없니? 집에 남겨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타고 두 달 반을 갈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고? 그럼 다시 잘 생각해 봐. 아직 보름간의 시간이 남아 있잖아. 네 계획을 되돌릴 수 있어. 리조트 주차장에 아직 네 자동차도 있잖아. 도망가!
"문명의 욕망은 결국 인간을 더욱더 큰 자극에로 휘몰아가며, 인간은 결국 삶의 정로(正路)를 잃게 된다."
이 글은 남극에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경쟁을 통해(어느 때보다 경쟁률이 낮았지만) 선발되어 좋은 시설을 갖춘 장소에서 자가격리를 한 후 배에 올라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 받고, 남극을 향해 가는 길에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나 자신 말이다. 밤새 쉬지 않고 달리는 배의 왼쪽 동녘 하늘을 은은한 주홍빛으로 물들이던 아침놀, 산호해의 수평선 구름 사이로 보이던 옅은 분홍빛 석양, 줄을 맞춘 듯 낮게 드리워진 남태평양의 뭉게구름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거친 파도 위를 유유히 날던 갈매기들, 수면 위를 쏜살같이 날아가는 날치 무리, 브릿지에서 처음 마주쳤던 장엄한 남극대륙, 대륙과 해빙이 하나인 듯 온통 하얗게 펼쳐져 있던 설원, 바다의 얼음을 깨고 대륙에 다가가던 쇄빙선의 요란함, 갈라지는 얼음을 피해 도망가던 펭귄들, 장보고기지 앞바다에 출몰한 바다표범, 로스해역 활동 중에 마주친 끝이 보이지 않던 거대한 빙벽 등 이 모든 것들을 과연 누가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하루 종일 GPS만 들여다보고 있다. 적도를 지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다시 날이 흐리고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데, 습한 공기가 폐 안으로 깊숙이 밀려들어온다. 선내 방송에서 모두 헬리데크로 모이라고 한다. 이제 적도에 가까워져 통과하는 시간에 기념촬영을 하려는 것이다.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하라기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박스 깊숙이 넣어두었던 옷을 꺼내 입은 후 위에 빨간색 단체복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조금 전까지 "후두둑" 쏟아지던 비는 오지 않는다. 내 옆에 있던 승조원 한 분이 손가락으로 먼 바다를 가리키며 "저기 저쪽에 적도를 표시한 빨간색 깃발이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어디 있지?'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 위를 훑다가 '도대체 여기서 보일 게 있을까?' 하며 승조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모였다.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서 말이다. 우리는 '빨간색 깃발'이 아니라 'GPS'가 적도라고 가리키는 지점을 통과하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남극에 가는 것을 부러워하고, 나 또한 그럴 만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누구나 가져볼 수 없는 보화'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녀야 할까? 정말 나는 그것을 가져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갖은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자랑 삼아' 늘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내게 제공되는 음식을 접시에 가득 담은 후 다 먹지도 못하고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배를 타고 가는 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천혜의 자연인 남극을 내가 누려야 할 어떤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 (중략)…. 어쩌면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아야 더 아름다울 곳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가야 한다면, 그것이 나라면, 더 큰 책임감과 의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다. 엄마는 배에서 내려 자갈을 밟고 비를 맞으며 황량한 세종기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딸은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에 도착해 콧물을 훌쩍이며 역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의 상황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전주도, 남극도, 그 어느 곳도 앞으로 맞닥뜨릴 일에 대해 우리에게 명확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표도, 안전한 길도 그리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결국은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딸과 나는 지금 모험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그래, 죽자. 차라리 죽어버리자. 내가 지은 모든 잘못을 책임지자. 아들을 저렇게 만든 건 나다. 아들을 살맛 안 나게 만들어놓고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아들을 밤낮으로 게임에만 빠지게 만든 것은 나다. 부여잡을 희망조차 없게 내가 만들었다.'
옷을 마구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눈발이 섞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바람에 등 떠밀리듯 서쪽 세종곶을 향했다. 누군가에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해안 자갈 위를 달렸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파도는 해안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자갈길이 점점 물에 가까워지면서 파도의 거품이 내 발로 튀어 올랐고,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저려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기 시작했다. 왼쪽에 호수가 나타나면서 바다 사이의 길이 더 좁아져 천천히 걷는데, 저 앞 오른쪽 해안에 스쿠아 두세 마리가 머리를 조아린 채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을 지나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쿠아들이 작은 펭귄 한 마리를 사정없이 뜯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불쌍한 펭귄을 먹어?' 그놈들의 모습에 질려 얼굴을 돌리고 서둘러 지나쳐 가려는데 스쿠아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난 화가 나 그놈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이놈들아, 꺼져!" 하지만 그놈들은 내가 던진 돌을 피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오히려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 마리가 넘는 스쿠아가 떼거지로 몰려와 아주 낮게 비행을 하며 내 얼굴 가까이까지 접근했다. 나는 돌을 집어 던지고 또 던졌다. 바람은 외투 모자를 뒤집어 벗겨 놓았고, 눈발이 얼굴을 사정없이 치고 지나갔다. 요란한 파도소리가 내 주위를 감쌌다.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녀석들은 돌을 한꺼번에 두세 개 던져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을 집느라 몸을 접었다 폈다 하니 허리가 아팠고 기운이 빠져 후들거렸다.
"좋아, 계속 덤벼 봐! 내가 여기서 죽으면 네놈들 때문에 뼈밖에 못 추릴 거다. 너희들이 내 몸뚱이를 저 펭귄처럼 게걸스럽게 먹도록 하지는 않을 테다. 그런 즐거움을 너희들에게 주지는 않을 테다!"
그때 오른쪽에 무언가가 있는 게 느껴졌다. 바다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니 자갈 둔덕 위에 펭귄 다섯 마리가 일렬횡대로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몸을 뒤흔들며 마구 돌을 던지던 곳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듯, 나를 응원하듯 자신들의 흰 배를 내 쪽으로 드러내며 말이다. 펭귄들은 호시탐탐 자신들을 잡아먹으려고 낮게 비행하는 스쿠아들에게서 벗어나 잠시 평온한 순간을 맞이한 듯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며 중간중간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얼마간은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흰 배를 드러내던 녀석들이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파도의 흰 거품 속에서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놀고 있었다. 바람이 세종곶을 돌아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바다 쪽으로 거세게 떠민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밝은 갈색의 절벽을 향해 걸어간다.
하루는 니체 전집이 꽂힌 책장 앞에 서서 한 권 한 권 책을 꺼내어 맨 뒤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하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대출 장부를 꺼냈다. 빈 종이도 있지만 이름 적힌 대출 장부도 있었다.
"[비극의 탄생] 89년 3월 12일, 000. 94년 8월 20일, 000."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월 22일, 000.", "[우상의 황혼] 92년 1월 2일, 000.",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5월 1일, 000."
나는 대출 장부를 열어보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같은 공간과 책 한 권을 공유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사상을 공유한다는 게 신비로운 일처럼 여겨졌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름을 적은 그 대원들과 왠지 모를 유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 니체의 책 한 권을 또 빌렸다. 월동을 끝내고 나갈 때까지 다 읽지 못할 것 같아 '귀국을 하는 길에 들고 갈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장부에 적힌 내 이름 밑에 또 다른 대원이 자신의 이름을 멋지게 적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 생각은 아예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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