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생활·문화

[스프] '시간의 빈곤', 값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불평등의 민낯

심영구 기자

입력 : 2023.08.21 10:01|수정 : 2023.08.21 17:20

[뉴욕타임스 칼럼] A Hidden Currency of Incalculable Worth, By Esau McCaulley


스프 NYT 뉴욕타임스(시간의 빈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써 맥컬리는 칼럼니스트이다.
 

가난은 가장 무자비한 시간 도둑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는 돈을 버느라 자녀와 보내야 할 시간을 매일 몇 시간씩 빼앗긴다. 자녀의 스포츠 경기나 합창대회, 발레 공연에 가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가 집에서 숙제하는 것도 도와주지 못한다.

가난은 토요일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아이와 소파에 앉아 만화 볼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렇다는 잘못된 믿음은 끈질기게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가운데, 현실 속 수많은 부모들은 오늘도 자식들에게 안정적인 의식주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마다하지 않고, 시간표를 마음대로 짤 수 없는 장시간 노동에 뛰어든다.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가리켜 시간의 빈곤이라고 부른다. 사실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없는 걸 빈곤의 징표로 삼는 것이 다소 낯설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이란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귀중한 것을 앗아간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시간의 빈곤”은 의미 있는 통찰이다.
 
내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에서 야간 교대 조로 일하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새벽 2시부터 정오까지가 어머니가 일하는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쉴 수 있는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무척 피곤하셨을 테지만, 늘 우리 손을 꼭 잡고 교회에 가셨다. 어쩌면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일주일에 얼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이 어머니한테는 정말 소중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식을 늘 직접 보살필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하나님께 나와 형제들을 굽어살펴달라고 기도하셨다.

나와 동생들이 어렸을 때 우리 등하교를 책임진 건 어머니의 이웃, 친지들이었다. 이따금 이모나 사촌 형, 누나 혹은 할머니가 오셔서 저녁때 우리를 봐주셨다. 한부모 가정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며,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주변의 도움 없이 아이를 기르기는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이웃과 친지가 끝없는 품앗이를 통해 곡예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해야 간신히 하루하루를, 매주를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어렸을 땐 이런 상황이 특별히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아는 또래 아이들은 어차피 대개 전자기기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반대로 물질적인 빈곤은 매번 나를 아주 괴롭게 했다. 이웃 사람 중에 어머니가 일하느라 나를 자주 돌봐주지 못하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내 운동화가 나이키가 아닌 걸 지적하는 사람은 더러 있었다. 심지어 학교에선 그걸 놀려대는 친구들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만한 곳으로 전학 갔는데, 그렇게 팍팍하게 사는 나를 조롱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내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던 셈이다.
 
미래를 꿈꿀 때 나는 한 번도 시간 부자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신 손에 쥘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나와 내 가족에게 줄 수 있기를 갈망했다. 내 아이들의 자존감을 뒷받침해 줄 만큼 단단한 재정적인 벽을 쌓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옷장에 있는 몇 벌 안 되는 옷들을 바라보며, 뭘 입어야 그나마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꿨다. 초라한 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친구를 선뜻 집에 초대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원하는 선물을 받아 들고 정말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대개 일찍 철이 든다. 변변찮은 선물을 받고도 부모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실망스러운 감정을 감쪽같이 숨기고 정말 기분이 좋은 척 연기하는 법을 익힌다. 우리 집 형편이 얼마나 팍팍한지 새삼 일깨워 주는 선물을 받고도 우리는 진심 어린 웃음을 짓는 법을 안다. 나는 내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다면 그런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여기서 다시 시간이 등장한다. 경제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대학교 졸업장을 따는 거다. 때로는 석사나 박사 학위가 있으면 더 좋다. 공부를 잘하려면 많은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시간이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려면 또다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부모 세대와 달리 생존을 위해 시간을 거래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희생하곤 한다. 누구도 우리한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면 월급을 좀 덜 받더라도 나와 가족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더 나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항상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좋은 집, 지금 자녀가 다니는 학교보다 교육 환경이 더 좋은 학군이 있기 때문에 돈은 늘 다른 것을 제치고 우선순위가 된다.

온 사회와 문화가 우리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뒤돌아보지 말고, 아니 옆도 보지 말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라고, 계속 더 많이 일하라고 다그친다. 그렇게 했을 때 주어지는 성공의 결과물도 확실하다. 내 아이들은 나는 비싸서 못 신었던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는다. 또 어릴 적 나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네에서 자란다.

반대로 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숨겨진 화폐와도 같다. 대신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수많은 연구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부모가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아이들의 정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일수록 학교생활도 잘하고,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을 인식하고 아껴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시간을 허비하며 산다. 자녀가 어릴 때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기에 더욱 귀한 자원이다.

어느 날 나는 우리 가족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당시 일곱 살이던 딸아이가 내게 자꾸 이렇게 묻고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스프 배너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