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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꼴찌 비거리' 단타자들, 골프계를 뒤흔들다

권종오 기자

입력 : 2023.06.28 13:01|수정 : 2023.06.28 13:01

정교한 샷, 탁월한 쇼트게임이 성적 비결


골프에서 비거리가 짧은 사람을 흔히 '짤순이'라고 합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속어이지만 '단타자'란 표현보다는 입에 착 감긴다는 이유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홍지원
지난 6월 18일 끝난 최고권위의 한국여자오픈에서 비거리가 짧기로 유명한 홍지원 선수가 연장전 끝에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자 국내 일부 언론은 '짤순이'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홍지원이 단타자도 얼마든지 어려운 코스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페이빈, 250야드로 남자 US오픈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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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골프 역사를 보면 슈퍼스타들은 대부분 장타를 자랑했습니다. PGA투어 통산 82승으로 최다 우승에 빛나는 샘 스니드, 그리고 스니드와 나란히 82승을 기록 중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멀리 치는 선수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도 장타력을 보유한 스타였습니다. 이처럼 장타력이 없으면 명함을 내밀기 힘든 미국 무대에서, 그것도 코스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메이저대회 US오픈을 제패한 '단타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코리 페이빈입니다. 페이빈은 짧아도 많이 짧았습니다. 1m75㎝에 68㎏으로 크지 않은 체격의 페이빈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50야드에 불과했습니다.

요즘 웬만한 여자 프로선수도 칠 수 있는 수준이고 남자 일반인들도 충분히 낼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페이빈은 괴력의 존 댈리 등 엄청난 장타자가 즐비한 가운데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시네콕 힐스 코스에서 1995년 US오픈을 당당히 제패했습니다.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사실상 꼴찌였지만 그가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거머쥔 원동력은 페어웨이를 놓치지 않는 정교한 샷과 탁월한 쇼트게임이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그의 벙커 세이브율은 65%나 됐습니다. 벙커에 들어가도 2타 안에 홀아웃할 확률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입니다.

우즈 꺾고 디 오픈 우승한 레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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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와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 가운데 손꼽히는 단타자는 저스틴 레너드였습니다. 레너드의 비거리는 1997-98시즌 267야드, 1998-99시즌에는 271야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1997년 유서 깊은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에서 300야드를 훨씬 넘게 치는 우즈를 비롯한 당대의 장타자를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디 오픈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회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꿈의 무대입니다. 레너드는 PGA투어 통산 12승을 거두며 단타자도 얼마든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선수입니다.

69승 신화 쓴 단타자 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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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호(68세) 선수는 한국 프로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정규 투어 통산 43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고 50세 이상의 선수가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 15승, 60세 이상의 선수가 출전하는 그랜드시니어부문 11승으로 총 69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1996년 영남오픈에서 42승째를 거둔 그는 그로부터 9년 뒤인 2005년에 만 50세의 나이로 매경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국내 최고령(50세 4개월 25일) 우승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가 갖고 있는 기록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KPGA투어 상금왕 9회, 1978년부터 10년 연속 매년 우승, 1981년부터 19년 동안 매년 상금랭킹 10위 내 진입, 연간 최소 평균타수상인 덕춘상 11회 수상 등 화려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최상호 선수는 데뷔 때부터 비거리가 짧은 약점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그의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60야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확한 아이언샷과 빼어난 퍼팅, 탁월한 코스 파악 능력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한국오픈의 사나이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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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IMF 시절이던 1998년 7월, 박세리 선수는 해저드에 발을 담근 채 샷을 날리는 투혼을 발휘하며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하는 신화를 썼습니다. 전국은 골프 열기로 들끓었습니다. 이로부터 2개월 뒤인 1998년 9월 한국오픈에서 만 17살의 고등학교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당시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대섭은 아마추어 신분으로 내셔널 타이틀인 제41회 한국오픈 정상에 올랐습니다. 김대섭은 경기도 고양시 한양CC 신코스(파72)에서 열린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6개, 보기 1개를 치며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했습니다. 쟁쟁한 국내외 프로골퍼들을 모두 제치고 5타 차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성균관대에 다니던 2001년 그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또 한국 오픈에서 우승했고 2012년에도 한국 오픈 정상에 서는 등 통산 10승 가운데 메이저 대회에서만 5승을 수확했습니다. 그의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60-70야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쇼트 게임의 귀재', '골프 천재'로 불리며 골프계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한미일 모두 정복한 신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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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단타자 가운데 성공한 대표적인 선수는 단연 신지애입니다. 특히 신지애는 한국, 미국, 일본 무대를 모두 정복한 스타로 유명합니다. 신지애의 전성기 시절 저는 제주도 핀크스 골프장에서 그의 샷을 눈앞에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동영상 촬영을 위해 드라이버샷을 2번 쳤는데 공 2개 모두 페어웨이 정중앙에 떨어졌습니다. 비거리는 똑같았는데 두 공 사이의 거리는 1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언샷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30야드 거리에서 8번 아이언으로 한번, 9번 아이언으로 한번 쳤는데 공 2개 모두 핀 2m 안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했습니다. 신지애는 실제로 각종 대회에서 페어웨이 우드로 핀을 맞힐 만큼 신기의 샷을 여러 차례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고 업적은 프로 통산 63승을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0승(아마추어 1승 제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1승, 일본 투어에서 28승, 호주 등 기타 투어에서 5승 등 통산 64번 우승했는데 국내 여자 선수로는 역대 최다승을 보유 중입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LPGA에서 3승을 거뒀던 신지애는 그 해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36야드로 198위에 그칠 만큼 짧았습니다. 대표적인 단타자였지만 송곳 같은 샷과 탄성을 자아내는 쇼트 게임, 그리고 강한 정신력으로 비거리의 약점을 뛰어넘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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