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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중요 회의 소집해 놓고 연설도 안 한, 혹은 못 한 김정은…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입력 : 2023.06.19 16:06|수정 : 2023.06.19 16:06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를 지난 16일부터 어제(18일)까지 진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도 참가했는데, 노동신문의 보도 내용이나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김정은이 연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상황인데?


노동당 전원회의는 북한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회의입니다.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이른바 '당-국가 체제', 즉 당이 곧 국가인 체제로, 조선노동당이 곧 북한입니다.

조선노동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는 '당대회'인데, '당대회'는 5년에 한 번씩 열도록 돼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당중앙위원회가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합니다. 당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1년에 한 번 이상 소집하도록 돼 있는데, 북한의 노동당 규약을 보면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 시기 당 앞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한다고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대회가 없을 때 1년에 한두 차례 소집되면서 북한의 주요 정책 결정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회의체입니다.

전원회의가 이같이 중요한 회의이기 때문에, 전원회의가 열리면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당 사업에 대한 갖가지 보고와 평가, 지시를 해 왔습니다. 과거 북한이 보도한 전원회의 영상을 보면, 김정은이 계속 연설을 하고 참석자들이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이 전원회의의 거의 다였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과거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있었던 노동당 전원회의들 중에 김정은 연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은 2016년 5월의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와 2021년 1월의 제8기 제1차 전원회의 정도입니다. 당시 전원회의들은 직전 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열렸기 때문에, 김정은이 별도로 연설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대회 내내 김정은이 연설을 통해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전원회의에서 다시 연설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8차 전원회의 주재하는 김정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이번 전원회의는 당대회 직후의 전원회의도 아닌데 김정은이 연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김정은이 연설했다는 문구가 없고,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에서도 김정은이 주석단에 앉아있을 뿐 연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요 보고가 진행되는 동안 김정은이 이어폰 같은 것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요 안건 보고가 방송시설을 통해 이뤄진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당의 중요한 회의를 열어놓고 최고지도자가 연설도 하지 않았다니 무슨 일일까요?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며, 이유를 정확하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위성 발사가 실패했고 경제성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내세울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직접 나서기가 좀 어려웠던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번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직설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가장 엄중한 결함은 지난 5월 31일 우주개발부문에서 중대한 전략적 사업인 군사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것"이라며, "위성 발사 준비사업을 책임지고 추진한 일군(일꾼)들의 무책임성이 신랄하게 비판"됐다고 전했습니다.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단순한 오류 정도가 아니라 '엄중한 결함'으로, 또 이를 '일꾼들의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북한이 이번 정찰위성 실패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김정은에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가 실패하면서 김정은의 분노가 컸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원회의는 여러 부문의 경제 성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건설부문과 어린이 젖제품(유제품) 보급 등에서 성과를 자랑하긴 했지만 일부 부진을 인정한 점도 눈에 띕니다.

북한은 "상반년도 경제사업에서 인민경제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는 엄격한 규율을 확립하지 못하고 경제의 자립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 있게 진행하지 못한 일련의 폐단들"이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자력 번영의 활로를 열어나가려는 의지가 전 인민적인 사상 감정으로 승화된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경제적 장성에도 대비할 수 있는 커다란 성과"라며 실적 부진을 애써 자위하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당 핵심 간부 인사에서 노동당 경제부장이 교체됐다는 점입니다. 북한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당 중앙위원회 전문부서의 부장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회의에서 전문부서 부장들 가운데 경제부장만이 교체됐습니다. 전반적인 부장 인사가 아니라 원-포인트 인사에서 경제부장만이 교체됐다는 것은 문책성 인사로 보이는데, 경제성과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 걸음 더


이번 노동당 전원회의를 전반적으로 되짚어 보면, 북한의 불편한 심기가 느껴집니다. 북한은 당초 6월 상순 전원회의를 연다고 공표했는데, 지난 15일까지도 회의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북한에서 상순은 15일까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전원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왔는데, 지난 16일부터 전원회의가 열렸다는 보도가 뒤늦게 나왔습니다.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게 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회의를 주도적으로 주재하면서 각종 평가와 지시를 해야 할 김정은은 주석단에 앉아서 표결만 했을 뿐 일체의 연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군사정찰위성 실패와 관련해서는 '엄중한 결함' '무책임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라는 차가운 문구가 등장했고, 경제 성과에 대해서도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일부 부진 인정과 당 경제부장의 전격적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마뜩잖은 회의가 이뤄진 셈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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