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책들. 이 은밀한 쾌락을 완성하는 책은 정해져 있다. 낯선 손님은 나의 식탁에 초대받지 못한다. 수십 번도 아닌 수백 번 읽어서 이미 외운 지 오래인 책들만 올라오고, 책장이 저절로 펼쳐질 정도로 같은 곳만 계속 본다.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먹는다.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쾌락이 있을까."
"작은 소망이라면 독자들이 이 책을 들고 식탁 앞에 앉는 것이다. 종이 위의 음식들이 나에게 준 흥분과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은 꾸역꾸역 넘겨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가장 은밀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포르노의 미덕은 누가 뭐래도 실용성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푸드 포르노 중독자였다'에서
"15년 전 나는 결심했다. 언젠가는 토끼정을 찾아 일본으로 가겠다고.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런 가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끼정은 너무 근사하다. 너무나 하루키적으로 근사한 이야기라서 사실일 리가 없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허구를 지어내는 일상을 가진 사람 아닌가. 내가 홀린 건 그 허구였고, 그 진위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지 않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낚인 사람 클럽'에서(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우리는 왜 기내식에 매혹될까. 나를 홀리는 것은 여행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대다. 왜냐하면 환상은 언제나 현실보다 우월하며, 기만은 필연적으로 진실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비행기에서 싸구려 쟁반을 받아 들고 플라스틱 뚜껑을 여는 순간이다. 사각 쟁반 위에 우주가, 자기 완결적 세계가 있다. 기내식은 여행의 완벽한 축도인 동시에 여행자의 만다라다."
-'사각 쟁반 위의 만다라'에서(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열두 살짜리 미국 여자애들이, 이 시고 맵고 짠 걸 날마다 학교에 들고 가서 책상 서랍에 숨겨 두고 틈날 때마다 빨아먹었다고? 국물이 뚝뚝 떨어질 텐데 맨손으로? 말도 안 돼. 다시 인터넷을 뒤지니 전 세계에 비슷한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라임피클의 정체는 로리가 어째서 에이미와 결혼했느냐와 함께 '작은 아씨들' 애호가들을 괴롭히는 양대 의혹이었다."
-'라임피클을 쫓는 모험'에서(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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