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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빼앗으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심영구 기자

입력 : 2023.05.16 11:01|수정 : 2023.05.16 11:01

[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5 - Raiders of the Deep


스프 아웃로오션(5편)
 

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그들이 바렌츠 해에서 해상시위를 한 이유는

2017년 8월 18일, 노르웨이 북쪽에 있는 바렌츠 해(Barents Sea). 전 세계 25개국에서 온 활동가 35명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아틱 선라이즈'를 타고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그중 몇몇은 카약에 올라 피켓을 펴 들었습니다. "No Oil Drilling in the Arctic"(북극에서 석유 시추는 안 된다) 커다란 지구본을 바다에 띄우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해상시위를 벌인 장소는 노르웨이의 국영기업 스타토일(Statoil)의 석유 시추시설 앞 바다였습니다.

스프 아웃로오션(5편)
몇 시간 뒤 스타토일의 요청을 받은 노르웨이 해안경비대는 활동가들과 승무원을 체포했고 아틱 선라이즈를 견인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시위는 중단됐습니다.(사흘 뒤 체포됐던 활동가와 승무원들은 풀려났습니다.)

스타토일은 노르웨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바렌츠 해 유전 시추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북해와 노르웨이 해에서 해저 유전 시추를 해왔는데 바렌츠 해 진출은 노후 유전의 감산에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스타토일 외에도 13개 업체에 10개 면허가 발급됐습니다.
 

두 얼굴을 가진 정부

노르웨이 헌법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헌법 112조는 '모든 사람은 건강에 이로운 환경과 생산성, 다양성이 유지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합니다. 그럴 만큼 '탄소 제로'를 위한 노력이 진심이라고 평가받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선진국 중에서 가장 먼저, 2016년 6월 '파리 기후변화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을 비준한 것도 노르웨이 정부입니다. (파리 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섭씨 1.5도 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아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채택됐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화석연료, 그 대표격인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 중 한곳도 노르웨이입니다. 전 세계 원유 수요의 약 2%, 천연가스 수요의 약 3%를 생산합니다. 수출액의 절반 가까이는 원유와 천연가스 부문에서 벌어들이는데 이런 '오일 머니'가 노르웨이의 탄탄한 복지와 풍요로움의 기반입니다. 러시아, 캐나다, 미국 등과 석유 자원 개발을 위한 경쟁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노르웨이가 20년 만에 발급한 바렌츠 해의 대규모 유전 발굴 면허도 그 일환입니다.

스프 아웃로오션(5편)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해저 석유 발굴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해양 오염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기후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바렌츠 해에 있는 스타토일 석유시추장 앞에서 그들이 벌인 해상시위는 이런 배경 속에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법원의 판단을 기대하며 소송에도 나섰습니다. 그린피스 등은 노르웨이 정부가 바렌츠 해 석유시추 면허를 발급한 게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4년에 걸친 소송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헌법의 그 조항이 이번 면허 발급에 해당하지 않고 석유 탐사 허가로 인해 국민의 생명이나 건강에 실질적인 위험성도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편 앞서 등장했던 노르웨이의 국영기업 스타토일, 2018년 회사 이름을 에퀴노르(Equinor)로 바꿨습니다. 이름에서 오일(Oil)을 빼버리고 평등(Equality)과 노르웨이(Norway)를 넣음으로써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주력하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까진 석유 사용이 어쩔 수 없다는 게 에퀴노르 그리고 노르웨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알지도 못한 채 훼손해버릴 수 있다

스프 아웃로오션(5편)
북극해로부터 지구 한 바퀴를 돌아가면 남아메리카가 있습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기업은 '페트로브라스(Petrobras)'입니다. 브라질의 국영기업인 이 회사는 아마존 강에서 해저 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산호초입니다. 2016년 아마존 강어귀에서 런던 면적의 6배가 넘는 대규모 산호초가 발견됐습니다. 이 산호초는 해면을 비롯해 여러 어종과 갑각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슨 역할을 더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부 연구진은 해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파울루 대학 연구에 따르면 해면이 사람과 비슷한 유전자와 단백질을 갖고 있어 항암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해면이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드는 화학물질은 바이러스 퇴치에도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산호초에는 어떤 생태계가 조성돼 있고 인류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지 모르는데 석유나 광물 탐사를 위해 산호초를 훼손하게 되면 그 가능성을 알지도 못한 채 사장시키는 셈이 됩니다. 페트로브라스의 해저 탐사가 인류에게도 손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페트로브라스는 아마존 유정 개발에 대한 정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브라질 환경 기관은 정부에 승인 반대를 권고했고 브라질 정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일 머니'를 원하는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

스프 아웃로오션(5편)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있는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심해 자원 탐사에 적극적입니다. 나우루는 한때 인광석이라는 자원의 보고로 1968년 호주로부터 독립한 뒤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까지 오를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자원 채굴량이 감소하면서 별다른 산업이 없던 나우루는 이내 경제 위기에 빠졌습니다. 요즘 들어 나우루 정부가 주목하게 된 건 심해 탐사입니다.

나우루는 국제해저기구 ISA(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에 2021년 상업용 '심해 채굴'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돈벌이를 위해 바다 밑 자원을 채굴하겠다고 알려온 겁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심해 채굴을 허용하면 해양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고, 찬성론자들은 바다 밑의 자원을 활용해 전기차용 배터리 같은 청정 기술 개발을 촉진하면 오히려 지구 온난화 억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023년 5월 현재, 아직 해저기구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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