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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단 1천 분의 1초가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권종오 기자

입력 : 2023.04.19 13:01|수정 : 2023.04.19 18:59

[별별스포츠+] 100미터 경주에서 1cm 차이... 희대의 명승부!


흔히 올림픽의 꽃은 최장거리인 마라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육상의 꽃은 무엇일까요? 바로 최단거리인 100m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프린터들이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이는 만큼 여러 선수가 동시에 골인을 해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나오면, 정말 짜릿한데요. 숱하게 나온 간발의 차 승부 가운데 압권으로 불리는 명승부가 바로 1993년 벤츠와 포르셰의 고향,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100m이었습니다.
 

숙명의 라이벌 게일 디버스 vs 멀린 오티

1993년 세계육상경기선수권
보통은 총알만큼 빠른 사나이가 탄생하는 남자 100m에 관심이 모이기 마련인데요. 이번만큼은 여자 100m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미국의 게일 디버스와 자메이카의 멀린 오티! 이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00미터를 석권한 게일 디버스와 만년 2위였지만 1983년부터 꾸준히 메달을 획득해 온 흑진주 오티, 이 걸출한 두 선수가 숙명의 대결을 펼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게일 디버스는 5 레인에, 멀린 오티는 디버스의 바로 오른쪽인 6 레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출발 전부터 방송 중계진은 두 선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두 선수는 경주마처럼 튀어나갔지요. 단거리의 생명인 스타트에서는 디버스가 빨랐습니다. 디버스의 승리가 예상됐는데요, 하지만 스타트에서 뒤졌던 멀린 오티가 약 60m부터 폭발적인 질주로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골인 지점을 10m쯤 남겨놓고 오티가 마침내 디버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두 선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리며 결승선을 거의 동시에 통과했습니다. 결과는 10초 82. 전광판에 찍힌 기록은 100분의 1초까지 똑같았지요.

경기장을 가득 메운 8만 관중은 술렁거렸고, 잠시 후 사진 판독 결과가 나오자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렸습니다. 느린 화면을 아무리 돌려봐도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진 판독기는 두 선수의 아주 미세한 차이를 가려냈습니다. 게일 디버스가 금메달, 멀린 오티는 은메달이었지요.

여러분, 두 선수의 차이는 얼마였을까요? 디버스가 10초 811, 오티는 10초 812. 단 1,000분의 1초 차! 세계 육상선수권에서 1천 분의 1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이 가려진 것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금메달을 따낸 디버스는 껑충껑충 뛰며 좋아했고 오티는 씁쓸함을 넘어 한마디로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습니다.
 

3년 뒤에는 200분의 1초 차!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그리고 3년 뒤인 1996년, 두 선수는 다시 만났습니다.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100m 결승이었지요. 1천 분의 1초 차이로 졌던 오티는 설욕을, 간발의 차로 이겼던 디버스는 수성을 단단히 별렀습니다. 그때 저도 경기장에 있었는데요. 자국 선수인 디버스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던 9만여 관중의 함성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엄청난 열기 속에 마침내 출발 총성이 울렸고 두 선수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요.

운명의 얄궂은 장난이었을까요? 이번에도 두 선수의 기록은 10초 94로 똑같았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사진 판독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제 손에서도 연신 땀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과는 게일 디버스의 승리! 게일 디버스 10초 932, 멀린 오티 10초 937. 1,000분의 5초 차이, 즉 200분의 1초 차이로 우승과 준우승이 갈리고 말았습니다. 자메이카의 흑진주 멀린 오티가 또 한 번 좌절하는 순간이었지요.

이후 오티는 올림픽에 무려 7회 연속 출전했습니다. 끝까지 올림픽 금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47살 때까지 그녀의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1,000분의 1초 차이, 100m에서 약 1cm의 차이는 그녀가 육상을 놓을 수 없게 한 원동력이었을지 모릅니다.
 

비욘디 7관왕 좌절시킨 100분의 1초

앤서니 네스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 수영 종목에서 연출됐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수영 스타는 단연 미국의 매트 비욘디였지요. 그의 목표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미국의 마크 스피츠가 이룩한 7관왕의 위업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표 달성 가능성은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남자 접영 100m에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남아메리카의 신생국, 수리남에서 온 무명의 한 흑인 선수에게 말이지요. 

출발부터 골인 직전까지만 해도 비욘디의 금메달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욘디가 1위로 들어오는 순간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수리남 선수 앤서니 네스티가 막판 엄청난 스피드로 터치패드를 찍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거의 똑같았지요. 하지만 기계는 두 선수의 아주 작은 차이를 가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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