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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에 납치' 67년 만에 국가 책임 인정…"10억 배상해야"

김상민 기자

입력 : 2023.02.15 19:12|수정 : 2023.02.15 19:12


67년 전 북파공작원에게 납치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민간인 피해자에게 정부가 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37민사부는 어제(14일), 민간인 납치 피해자 86살 김주삼 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하며, "정부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침해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 측은 위자료 15억 원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3분의 2에 해당하는 10억 원만 인정했습니다.

북한 황해도 용연군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김 씨는 지난 1956년 10월 10일 밤 집에서 혼자 잠을 자던 중 북파공작원 3명에게 납치됐습니다.

이후 '정보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분류된 김 씨는 서울 구로구에 있던 한미 군사 통합 기지에 억류된 채 약 4년 동안 무보수로 구두닦기 등 잡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공작원의 소속과 청구권의 소멸시효였습니다.

정부는 김 씨를 납치했던 북파공작원이 한국 공군이 아닌 미군 제1부대 소속이었다며 손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대한민국이 김 씨에 대한 납치행위를 주도적으로 저질렀거나 최소한 그 과정에 관여 내지는 가담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미 제1부대는 당시 한국 공군 장병과 함께 첩보 활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알려진 점, 김 씨를 납치해 온 공작원 역시 자신의 소속은 한국 공군이었다고 일관되게 밝힌 사실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또 지난해 8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김 씨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 등을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봤습니다.

정부는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으니 김 씨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없어졌다"고 항변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정부 산하 진실화해위원회가 김 씨를 납치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한 결정을 내린 만큼, 김 씨 입장에서는 국가가 적어도 '소멸시효 완성'이라는 이유로 권리가 없어졌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그러한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김 씨 소송을 대리한 이강혁 변호사는 SBS 취재진에게 "소송 쟁점이었던 북파공작원의 소속 문제와 소멸시효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위자료 인정에 관한 세부적인 기준을 밝히지 않고 청구 액수의 일부만 인정한 것은 아쉽다"고 전했습니다.

김 씨 측은 지난 2014년 고 김지하 시인이 과거 유신정권 시절에 입은 피해로 국가로부터 배상받은 15억 원을 기준으로 청구액을 산정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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