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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한 유명 유튜버의 고백…꿈을 이룬 후 찾아온 '현타'

심영구 기자

입력 : 2023.02.13 13:00|수정 : 2023.02.13 13:00

By 엘 밀스 (뉴욕타임스 칼럼)


NYT
*엘 밀스(Elle Mills)는 2012년부터 인기 유튜버였다. 그는 지난해 유튜브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까지 내 삶은 몇 개의 숫자로 요약할 수 있다. 구독자 170만 명, 총 팔로워 180만 명, 누적 조회수 1억 5,500만. 나는 12살 때부터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4살의 나이에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유튜브 세상에서 은퇴했다.

사람들에게 내 동영상에 관해 설명할 때 나는 "페리스 부엘러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고 상상해 보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옮긴이: 페리스 부엘러는 1986년 개봉한 영화 "페리스 부엘러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의 주인공이다.) 나는 크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담아 추억의 하이틴 낭만 영화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유튜브 세상에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낭만적인 삶이란 역설적으로 대단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이다. 내 채널은 유튜브가 없었다면 내가 일기장에 써 놓고 나만 봤을 것들만 모아둔 것처럼 솔직하고 꾸밈이 없었다. 실은 그게 유튜브 세상의 문화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에 열광한다. 자기를 드러내 관심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이에게 유튜브는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그러나 유튜브 세상의 또 다른 문화는 나를 상품으로 만들고, 그 상품을 잘 팔리게 포장하는 법을 찾고 익히는 일이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조회수, 구독자 수는 성공과 실패를 가차 없이 나눈다. 유튜버의 자존감은 그 숫자들이 올라갈 때는 한없이 치솟는다. 황홀한 성취감의 이면에는 반대로 그 숫자가 지지부진할 때 피할 길 없는 마음의 상처와 슬럼프가 있다.

여전히 수많은 청소년이 유튜버를 꿈꾼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유튜브에서 이룬 것을 동경하며,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대개 처음에는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그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반응하면 거기에 만족하면서 유튜브를 시작한다. 그러다 구독자가 1천 명이 되면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금전적 보상을 지급한다.

이 보상 자체는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구독자가 계속 늘어나다 보면 각종 협찬, 브랜드 광고 제의가 들어온다. 그렇게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잘만 하면 유튜버는 벌이가 괜찮은 어엿한 직업이 된다. 그러나 유튜브와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유튜브를 위해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하고,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유튜버가 되고 나서의 삶은 내가 어렸을 때 꿈꾸던 유명인의 삶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나는 구독자를 잃을까 봐, 대중이 내 영상을 외면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유튜브 구독과 좋아요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았고, 영상을 올릴 때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불안했다. 유튜브 채널에서 구독자들과 약속한 것들, 벌여 놓은 일들을 해내려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유튜브 때문에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면 어떤 엽기적인 일을 벌이면 좋을까?'에 골몰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찾은 엽기적인 소재는 언니의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정말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긴 했지만, (유튜브를 위해) 웃자고 벌인 해프닝이었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혼했다.)

그 동영상의 조회수는 300만에 육박했다. 누구든 이만한 조회수는 성공이라 부를 만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동영상에 등장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나는 유튜버라는 지위를 앞세워 관심받고 싶은 사람의 욕망을 내 멋대로 이용했다. 나와 함께 다른 사람의 일상도 화면에 담았지만, 유명해지고 돈을 번 건 나뿐이다. 내 유튜브에 동원된 이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유명해졌다고 해 봤자 나는 여전히 10대 청소년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고 꿈꿨지만, 그것은 이 사회와 문화가 우리에게 소망해도 좋다고 허용한 범주 안의 것들에 불과했다. 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솔직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돌이켜보면 그중에는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들도 많다.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솔직하게 나를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세에 취하다 보면, 자연히 나의 약점도 함께 보여주게 된다.

구독자 수, 조회수와 같은 숫자에 연연해 사람의 존재 가치마저 숫자에 결부하게 되면, 나의 약점이든 소중한 사생활이든 기꺼이 보여주고 조회수를 올리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된다. 끊임없이 더 많은 걸, 더 자극적인 걸 원하는 유튜브 구독자들을 영원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숫자에 연연하기 시작하는 순간 헤어 나오기 어려운 '유튜브의 덫'에 빠진다.

나는 사람들이 진짜 나를 이해하려면 나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2018년, 나는 번아웃된 내 모습을 담은 영상을 충동적으로 올려버렸다. 영상 속에는 감정적으로 무너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 모습도 나온다.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에서 비롯된 고통이었다. 그 불안과 우울증은 유튜버로서 계속 성공하기 위해 조회수에 목을 매야 하는 덫에 빠지면서 얻은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청소년이 동경하는 삶의 어두운 그늘이었던 셈이다.

번아웃 동영상과 함께 끝날 것 같던 나의 유튜버 경력은 더 이어졌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 영상이 더 큰 관심을 받아 새로 구독자가 유입되고, 기성 뉴스에도 소개됐다. 나의 밑바닥을 보여준 셈이니 솔직함으로 따지면 그만한 영상도 없긴 했지만, 이는 곧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팔았다는 뜻이다. 이 영상을 올린 뒤로 나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거기서 느끼는 여러 감정에 관해 일일이 의견을 내야 할 것만 같았다. 문제는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도무지 몰랐다는 거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계속 동영상을 찍어 올렸다. 지금 보면 그때 만든 영상들에서는 유튜브에 발을 들인 초기에 나를 성공으로 이끈 열정을 찾아볼 수 없다. 점점 더 실제보다 웃자란 가상의 나를 열심히 연기하고, 그 모습을 담아 유튜브 채널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됐고, 분명 어릴 적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유튜브에 올린 내 모습에 어울리는 "솔직한" 내가 되려면 나는 계속해서 상품 가치를 잃지 말아야 했다. 반대로 유튜브와 상관없는 곳에서 성인이 된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온라인 문화는 이제 막 자기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한 청소년에게 스스로 매력적인 상품이 되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실제 나보다 웃자란 나라는 상품을 좋아하는 팬이라도 생기면 그때부터 상품으로써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가 자꾸만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 온라인상에서 한번 굳어진 캐릭터를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누구도 나라는 상품을 바꾸기보다는 나를 그 캐릭터에 맞추려고 애쓴다. 본말이 뒤집힌 상황인데, 상품으로써 나에 맞춰 한결같이 사는 것도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발전 없이 정체되거나 억지스러운 장면이 나오거나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실제로 어른이 되고 나서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많은 청소년 유튜버가 소리소문 없이 유튜브 세계를 떠난다.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팬데믹은 내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사실 내게 유튜브 세상에서 은퇴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순간이 있던 건 아니다. 다만 팬데믹 때문에 나는 1년 정도 아무런 영상도 올리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더는 유튜브 세상에서 살지 않으며, 다시 돌아갈 일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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