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대표도 실패한 임윤찬 콘서트 '피케팅'
이샘 대표 : 손민수 선생님하고 몇 년 전부터 콩쿠르를 고민했는데 윤찬 씨는 인터뷰 나갈 때마다 콩쿠르는 시간 낭비라고 해서 뒷목 잡았다(웃음). 손민수 선생님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내보내자 하셔서 지난번 우승자가 한국인이었으니까 이번에 또 우승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했더니 선생님이 '저 재능을 그들이 몰라볼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One in a Million', 너무 특별하니까.
"만약에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콩쿠르는 생중계가 되니까 음악계 사람들이 저 재능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파장이 클 것이다. 우리는 그게 목표다."
현장에서 느낀 걸로는 임윤찬이 우승을 하지 못하면 폭동이 날 듯한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유튜브 영상으로 봐도 대단하지만 영상은 공연장 현장에서 목격한 것의 반도 담아내지 못한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바뀌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샘 대표 : 윤찬 씨는 정말 겸손하다. 본인이 예쁘게 말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다. 항상 연주 마치고 나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항상 부족하다고 한다. 관객들은 전원 기립하고 눈물 흘리시고 저도 인생이 바뀔 것 같은 경험을 한 공연이었는데도 너무 못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아티스트라서 제가 외부에서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본인이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한 공연을 준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다른 연주자들보다 훨씬 많이 소요된다. 제가 보기엔 된 것 같은데 심지어 같은 프로그램으로 얼마 전에 공연까지 훌륭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이샘 대표 : 부끄러운 얘긴데 저도 콘서트 티케팅에 도전했는데 실패했다. 부모님 티켓을 따로 해놓지 않아서 사야 했다. 예매 시작 시간 기다려 시도했는데 안 되더라. 윤찬 씨 공연은 정말 초대권을 최소화했고 구입 매수를 제한하고 본인 인증을 까다롭게 했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예매 과정부터 공평하고 정의롭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았다. 예매하는 데 고생하셔서 죄송한 마음 갖고 있다.
올해 윤찬 씨의 국내 공연 계획은 발표됐는데 해외는 9월에 시즌이 시작되니까 아직 발표 안 된 곳들이 많아서 그 이후 공연은 미리 공개하기 어렵다. 2023년 상반기까지 잡힌 공연들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가 해야 하는 위너스 콘서트가 많다. 그 이후의 스케줄은 목 프로덕션과 IMG(해외 매니지먼트 담당)가 같이 만들어낸 것들이 많다.
이번 달 런던 위그모어홀 공연(런던 현지 시각 18일 저녁 8시)과 이탈리아 공연이 있고 프랑스 루이비통 재단의 아티스트 리사이틀 시리즈에 참여한다. 또 뉴욕 필과 협연 데뷔가 있다. 7월, 8월 페스티벌 시즌에는 미국에서 최고 오케스트라들과 협연이 거의 매일 잡혀있다. 라흐마니노프 3번을 협연 곡으로 많이 요청하시는데 해외에서는 그 곡을 많이 연주하고 국내에서는 새로운 곡을 한다.
국내 공연으로는 6월에 루체른 심포니하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협연한다. 11월에는 뮌헨 필과 협연, 정명훈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한다. 한국에서는 4번을 연주해 본 적이 없어서 많이 기대하고 있다.
콩쿠르 때 경연곡을 공연에서 안 치는 이유를 많이 궁금해하시는데 윤찬 씨가 새로운 곡을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콩쿠르 곡을 다시 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퍼토리를 완성하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무대에 다시 올리려면 이미 다 완성을 했지만 그걸 다시 본인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정말 아티스트 말에 의하면 '생명을 다 바쳐야 된다'고 할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해외 공연장에서도 공연 프로그램에 왜 콩쿠르 곡을 안 넣어주냐, 네가 설득해 달라 하는데 이제는 제가 그들한테 이해해 달라고 설득한다.
*임윤찬은 현지 시각 18일에 열린 런던 위그모어홀 데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위그모어홀은 런던 중심가에 1901년 만들어진 실내악 전문 공연장으로 규모는 작지만 많은 연주자들이 서고 싶어하는 권위 있는 무대죠.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작곡가 존 다울런드의 ‘눈물의 파반느’(영국 작곡가 윌리엄 버드 편곡), 바흐의 신포니아, 그리고 베토벤의 ‘7개의 바가텔’ ‘에로이카 변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앙코르로는 영국 피아니스트 마이라 헤스가 바흐 칸타타를 편곡한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그리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들려줬죠.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말 그대로 뜨거웠습니다. 영국 미디어에 실린 리뷰를 읽어보니 까다로운 영국 평론가들이 '미국 콩쿠르에서 1등 했다지만, 그냥 테크닉 좋은 어린 연주자 아니야?' 하고 공연에 갔다가, 연주를 직접 보고는 '진짜(Real Deal)'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위그모어홀 공연 실황은 유튜브에서 공연일로부터 90일간 무료로 공개되니 직접 확인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RJeGcWZ-K5Q
이샘 대표 : 콩쿠르 우승하고 프로 데뷔하고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을 15년간 보아왔는데 윤찬 씨의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보통은 콩쿠르 우승자가 나오면 세계 무대에 안착하기까지 3, 4년이 걸리는데 윤찬 씨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연주 요청 메일이 쌓여서 메일을 확인하느라 며칠 밤을 새울 정도였다. 음악계 관계자들이 연주 영상을 보고 이미 팬이 된 것 같다.
해외 에이전시 계약도 너무나 많은 곳에서 제안을 주셨는데, 사실 그때 제가 가장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 같다. 연주자의 커리어와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쉽게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없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고 이런 상황이라 주변 분들의 조언도 많이 필요했다.
해외 에이전시 계약을 한 IMG는 매니저들이 이미 윤찬 씨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윤찬 씨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고 여러 부분에서 윤찬 씨의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데 알맞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대륙별로 매니지먼트를 두는 아티스트도 많지만 윤찬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IMG가 북미와 유럽을, 목 프로덕션이 아시아 지역을 총괄한다.
이샘 대표 : 목 프로덕션이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기로 한 것은 공연 횟수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중요한 시장이라 재팬아츠가 파트너로 협업한다. 매니저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심을 내자면 끝없이 욕심을 낼 수 있는 연주자이지만, 체력적으로 음악적으로 소진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공연 횟수를 유지하려고 한다. 연간 적절한 연주 횟수를 40회 이상 50회 미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한 달은 좀 많이 연주했다면 다음 달은 쉬고 공부를 하고, 그런 식으로 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2024년까지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로서 해야 하는 공연들이 좀 있어서 그 이후로는 그렇게 정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 '거절'이다.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샘 대표 : 저도 이게 사실인가 싶은데 12월에 마지막으로 미팅했던 건이 2027년 공연이었다. 한국에서는 그해 공연을 그해 섭외해서 진행하는 일도 흔하지만 해외에서는 저명한 공연장,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일수록 몇 년 치를 미리 잡아놓는다. 그래서 3, 4년 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정말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톱 오케스트라는 그 이후도 계획을 하더라.
2027년 스케줄도 짜고 있고 1년에 소화할 수 있는 공연 횟수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적으니까 일정이 더 빨리 차는 감도 있다. 그래서 공연을 좀 늘릴 수 있는 시기는 2025년, 2026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한국 팬들이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임윤찬은 왜 10회 투어, 전국 투어 이런 거 안 하냐. 하시는데 저도 팬으로서는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체력적으로 10회 투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아직은 윤찬 씨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면 좋겠다. 윤찬 씨가 공부 마치고 프로로서 완벽하게 연주만 해야 될 때가 되면 지금과는 좀 달라질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연주 더 하면 사실 금전적으로 수입도 늘어나고 매니저로서는 더 좋다. 하지만 연주자가 소진되고 소모되지 않도록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팬들께서 양해해 주시면 좋겠다.
이샘 대표 : 콩쿠르 우승 이전에 약속했던 광주시향 협연 음반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다. 그럼 다음 앨범은 어떻게 되는 거냐,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직 고민 중이다. 제안해준 음반사가 많은데 각각 특징이 있다. 윤찬 씨가 음반 녹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티스트이니만큼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검토해서 정하려고 한다. 윤찬 씨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음반사를 찾고 있다.
객석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것을 즐기는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윤찬 씨는 그보다는 혼자 사색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혼자 연습하는 걸 기뻐하는 아티스트다. 많은 연주가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산에 들어가서 혼자 피아노만 치고 살고 싶다고 한 얘기를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농담처럼 받아들이는데 저는 정말로 그럴까 봐 가슴이 철렁한다.
윤찬 씨는 진짜 혼자 골방에서 작곡가와 만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 기쁨을 빼앗긴다면 어느 날 그렇게 떠나도 이상할 거 하나도 없는 아티스트니까 저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무섭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틀어박히는 일이 없도록 설득을 할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도 들더라. 저는 비즈니스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매니저는 아니다. 연주자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느 순간 연주자가 '이게 행복하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면 연주자의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아무리 멋진 무대를 만들어 줘도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 상황이 저한테는 너무 힘들 것 같다.
이샘 대표 : 지난해 말 어린이 병원 한 곳을 찾아가서 조용히 음악 봉사를 하고 왔다. 미리 알리지 않고 연주해서 의료진과 환자들만 볼 수 있는 음악회였다. 또 최근에는 명동 대성당에서 자선 음악회를 했다. 윤찬 씨가 청소년이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 아니면 공연을 방문하기 어려운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런 분들을 초청했다. 명동성당에선 영 아티스트 후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윤찬 씨는 이번 공연을 노 개런티로 했고 티켓 수익은 영 아티스트 후원에 기부했다.
윤찬 씨는 제가 봤던 그 어떤 연주자보다도 헌신, 기부, 봉사에 가치를 많이 두고 있다.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리히테르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굉장히 즐겼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작은 마을 역에 내려서 선술집에 들어가서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치면서 그 마을 사람들과 음악을 나눴다고 한다. 윤찬 씨도 명동성당 음악회는 수익을 기부하는 형태였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직접 찾아가서 조용히 음악으로 봉사하는 걸 좋아한다.
윤찬 씨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얘기가 알려지니까 많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을 주신다. 물론 그렇게 같이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홍보가 많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임윤찬이 간다!' 이런 식이 아니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봉사할 계획이다.
이샘 대표 : 임윤찬 씨가 '신드롬급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까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고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윤찬 씨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인기나 관심이 급류에 휘말리는 기분일 것 같다. 이 강물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강일지라도 휘말린다는 건 내가 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직은 연륜이 부족한 아티스트한테 이 상황이 불안하거나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다.
아티스트가 이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음악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다. 강물에는 어디나 암초가 있고 바위가 있다. 제가 바위와 암초를 부수고 없앨 정도의 능력은 없더라도 암초가 있다면 제가 먼저 몸으로라도 충격을 조금 흡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정도가 매니저로서의 꿈이다.
윤찬 씨의 오늘은 팬들이 주신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18세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팬이 된다는 건 아주 '장기전'이다. 아티스트가 70, 80세까지도 연주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100세 인생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좀 믿고 긴 호흡으로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길고 행복하게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계속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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